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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의 팔라비 2세는 즉위 후 친서방 외교노선을 취하고 서구식 국가를 지향하는 개혁을 주도했다.

 

친서방 정책으로 미국, 영국의 지지를 받은 팔라비 왕조였으나 내부에서는 반발이 적지 않았다.

19세기부터 영국과 러시아의 영향하에 있었던 이란에서는 반서방 감정이 커졌고,

이슬람주의자들도 세속화 정책에 반발했다.

 

1978년 8월 20일에 아바단에서 일어난 렉스 극장 화재사건 발생하였는데,

정부에서는 이슬람주의자의 방화라고 주장했지만 반정부 측에서는 사바크의 방화라고 주장했고,

범인의 정체는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으나

이미 반왕정 시위가 거셌던 정세에 기름을 끼얹은 사건이 되었다.

전국적인 시위가 이어지는 가운데 9월 8일에는 테헤란 동부에서 대규모 시위가 일어났고, 군경은 유혈 진압으로 대응했으며 이 사건은 검은 금요일로 불린다.
혁명이 격화되자 당시 나자프에서 파리로 옮겨진 호메이니는 육성 카세트 테이프를 통해 이슬람주의자들의 결집을 촉구했고 하비비, 바니 사드르, 코틉자데, 야즈디 등의 해외 반샤 인사들을 규합했다. 

 

그 동안 이란에서는 팔라비 2세가 골람레자 아자리 장군을 내각수상에 인정하여 군대, 경찰의 힘으로 시위를 통제하려 했고, 여러 개혁조치들을 발표했지만 우방국인 서방에서도 팔라비의 인기가 떨어지며 안팎으로 무너지고 있었다.

 

결국 1979년 1월 16일에 팔라비 2세는 퇴위했고 1980년에 지병으로 망명지인 이집트에서 사망했다.

 

샤가 물러나자 귀국한 호메이니는 1979년 2월 1일에 귀국했고, 10일간의 접전 끝에 샤푸르 바크티아르 총리가 퇴임하면서 2월 11일에 팔라비 왕조는 무너지고 혁명이 성공했다.

 

3월 30일~3월 31일에 실시된 국민투표에서 발표된 결과는 이슬람 공화국 수립에 찬성하는 비율이 99%였고 이슬람주의자들은 이 투표 결과를 근거로 이슬람 공화국 수립을 선포했다.

하지만 투표율 자체를 의심한 다른 정파들은 당연히 반발했으며, 이슬람 정부는 암살, 숙청, 공산주의자 몰이로 이들을 박해하기 시작했다.

 

내부 교통정리를 끝낸 이슬람주의자는 6월 18일에 헌법초안을 완성했고, 율법 전문가회의 임원 73명을 8월 3일~4일에 선거로 선출한 다음 심의 끝에 11월 15일에 이슬람 공화국 헌법을 가결한 후 12월 2일~3일에 국민투표에서 98%의 지지율을 근거로 정식으로 이슬람 공화국을 수립했다.

 

혁명으로 왕정이 폐지되고 공화제가 수립된 이후에

말이 공화제이지 실질적으론 신정 독재 체제라 정권만 교체된 채 독재정치가 이어지고 있다.

거기다 기존에 팔라비 왕조가 내세우던 개방주의 정책이 부정되고 인권 탄압이 매우 심각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결과적으론, 극단 이슬람주의로의 반동이라고 볼수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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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의 마지막 왕 모하마드 레자 팔레비(Mohammad Reza Pahlavi, 1919~1980) 의 두번째 부인 소라야 왕비 (Soraya Esfandiary-Bakhtia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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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의 마지막 왕 모하마드 레자 팔레비(Mohammad Reza Pahlavi, 1919~1980) 의 두번째 부인 소라야 왕비 (Soraya Esfandiary-Bakhtia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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