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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종11년(1411), 한양에 조선 최초의 코끼리가 나타났다.

 

 

일본이 인도네시아에서 처음 들어온 검은색의 코끼리를 조선에 우호를 다지기 위해 바친것이다.

 

 

 

"왜국 국왕이 내년 2월에 처음듣는 짐승을 바치기로 하였다."

 

- 조선왕조실록 태종11년 12월 -

 

 

" 살은 마치 굼벵이처럼 쭈글쭈글 하였고 꼬랑지는 돼지꼬리를 닮았다.

걷는 모습은 만삭의 황소가 걷는것과 같이 둔했으며 소리내어 우니

그 소리가 어찌나 큰지 도성 전체가 혼란했다.

또한 거대한 코 옆에는 기이하게 큰 귀가 붙어있었는데 귓구멍이 보이지 않았다.

무릇 짐승이란 털이 있어야하는데 이 짐승은 털이 모두 빠져있어

흉측하기가 이를 데 없었다.

 

- 조선왕조실록 태종11년 2월 -

 

 

당시 태종은 이 코끼리를 말과 수레를 관장하던 사복시(司僕寺)에서 기르게 하였다.

 

그 이듬해에 이를 구경하던 이우라는 이가 추하게 생겼다고 비웃으며 코끼리를 막대기로

툭툭치며 침을 뱉었더니 성난 이 코끼리가 코로 말아 땅에 쳐 죽이는 이변이 생겼다.

 

이에 전국에 유생들이 벌떼같이 들고일어나 사람을 죽인 짐승을 사형에 처해야한다는 상소가 빗발쳤다.

이에 정승 유정현을 재판장으로 하는 우리나라 최초의 동물 형사재판이 벌어졌다.

 

 

정승 유정현이 코길이를 세워놓고,

상소를 크게 읽었다.

 

" 사람을 죽인 자는 사형에 처하는 것이 조선의 국법이거니와

1년에 수백 섬의 곡물을 없애는 죄인을 사형에 처함이 마땅하나

전하의 짐승 사랑이 지극하시어 형을 감형토록 하여 섬에 추방하는 것이니

죄인 코길이는 이에 감읍토록 하라 "

 

라고 하고 코길이를 귀양보냈다.

 

 

그리하여 한국 최초의 이 코끼리는 지금의 소록도인 노루섬에 유배를 당한 것이다.

 

그 후 전라감사로부터 코끼리가 물과 풀을 먹지 않고,

사람만 보면 슬피 울고, 눈물을 흘린다는 보고가 올라오자

태종은 " 짐승이라도 멀리 고향을 떠나 사니 그러할 만하다" 고 하며 육지에 내어 기르게 했는데

워낙 대식이라 비용을 감당하기 벅차다 하여 전라·경상·충청도에 돌려가며 기르게 했다.

그 후 공주에서 하인 하나 죽였다는 기록을 마지막으로 실록에서 증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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