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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우수가 담긴 흥겨운 춤곡 "왈츠 II"는

쇼스타코비치의 <재즈 모음곡 2번>에 들어 있는 곡입니다.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쇼스타코비치는 이 곡을 통해 재즈와 왈츠의 매력을 한 작품 안에서 다 표현하려고 했지만 막상 음악을 들어보면 왈츠라고 하기에는 조금 느리면서 어둡고 재즈라고 하기에는 그 웅장함이 관현악에 가까운 느낌입니다.

츠는 춤곡이지요.

하지만 경쾌한 세 박자를 타고 흘러가는 이 곡의 선율은 슬프고 어둡습니다.

요한 슈트라우스의 왈츠처럼 화려한 빈 풍이 아닙니다.

그는 스탈린 치하의 소련에서 "인민에게 음악으로 봉사할 것"을 요구받았지만 아마도 태생적으로 "모더니스트"였던 그는 내성적인 성격인데다 줄담배를 피었고 표정은 언제나 완고했지요.

그의 음악은 무겁고 어두운데다 팽팽한 긴장감마저 감돕니다.

그리고 행간에는 차가운 유머가 숨어 있지요.

이처럼 러시아의 우수가 어린 서정적 주제 선율을 왈츠라는 흥겨운 춤곡 형식에 담아냄으로써 감추려 하는 슬픔을 오히려 더욱 드러내주는 듯합니다.

금관악기의 대표라고 하면 역시 화려한 음색을 내는 트럼펫일 것입니다.

재즈 음악에서도 트럼펫이 애용되고 있고요. 트럼펫은 찬란하고 낭랑한 음으로 남성적 매력을 뿜어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중후하고 부드러운 음으로 여성적 애수에 찬 느낌도 전해주죠.

아마 쇼스타코비치의 "왈츠 II"의 주제 선율만큼 이러한 트럼펫의 음색을 잘 드러내는 곡은 없을 듯합니다.

 

쇼스타코비치의 <재즈 모음곡 2번> 8곡 중 여섯 번째 곡 "왈츠 II"는 <아이즈 와이드 셧> <텔 미 썸딩> <번지점프를 하다> 등의 영화 속에 쓰이면서 친숙한 클래식 음악이 되었죠.

<아이즈 와이드 셧>(Eyes Wide Shut, 1999)은 실험영화의 거장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유작이 된 작품으로, 톰 크루즈와 니콜 키드먼 부부가 주연한 영화입니다. 이 엽기적이고 난해한 게다가 야하기까지 한 영화에서 쇼스타코비치가 만들어낸 세 박자의 묘하게 슬픈 선율을 만날 수 있습니다.

<텔 미 썸딩>(1999)은 장윤현 감독의 작품으로 이 영화에서는 바흐의 <푸가 G단조>와 멘델스존의 <무언가> 중 6번, 그리고 쇼스타코비치의 "왈츠 II"를 들을 수 있죠.

김대승 감독의 <번지점프를 하다>(2000)에서는 해변에서 여주인공(이은주)과 남주인공(이병헌)이 춤을 추는 장면에서 "왈츠 II"가 흐릅니다.

 

 

 

 

 

 

 

Shostakovich, Dmitrii Dmitrievich (1906-1975)

 

 

    소련 연방시절 페테르부르크에서 활동한 작곡가이다.
    어려서부터 페테르부르크음악원 출신의 피아니스트인 어머니에게 피아노의 기초를 배웠고 11세 때 글랴세르의 음악학교에 들어가 정규의 작곡공부를 하였다.
    러시아혁명 후인 1919년에는 페트로그라드음악원에 입학 L.니콜라이에프에게 피아노를 M.시타인베르크와 A.K.글라주노프에게 작곡을 배우고 25년에 졸업하였다.
    졸업 작품인《제1교향곡》은 소련뿐 아니라 세계 악단에 그의 이름을 떨치게 하였다.
    당시 페테르부르크에는 유럽의 새로운 경향의 음악 즉 I.F.스 트라빈스키의 원시주의 A.베르크의 표현주의 작품들이 한창 연주되었으므로 그도 그들의 작품으로부터 큰 영향을 받았다.
    한편 이 무렵부터 예술에서 이른바 사회주의 리얼리즘운동이 전개되었는데 그 가 34년에 발표한《므첸스크의 맥베스부인》이 공산당의 예술운동에 역행한다는 이유로 비난을 받았다.
    창작에 대한 이러한 간섭은 당연히 문제가 되었으나 그는 이 비판을 견디어 내고 작풍을 전환하여 37년의《제5교향곡》으로 명예를 회복하고 40년《피아노5중주곡》으로 제1회 스탈린상을 받았다. 제2차 세계대전 때는 페테르부르크에서 방공감시원으로 종군하였고 42년《제7교향곡》 으로 다시 스탈린상을 받았다.
    그러나 대전 후인 45년에 발표한《제9교향곡》은 그 경묘한 내용과 신고전적 작품 때문에 “타락한 유럽 부르주아지의 형식주의에의 추종”이라는 공격을 받았다. 즉 “지다노프 비판”이다.
    그러나 49년의 오라토리오《숲의 노래》와 51년의 합창모음곡《10의 시(詩)》로 인기를 회복하고 또다시 스탈린상을 받았다. 그는 뛰어난 피아니스트이기도 하여 27년 쇼팽 국제콩쿠르에서 2 위를 차지하기도 하였다.
    37∼41년에는 페테르부르크 음악원의 43∼48년에는 모스크바음악원의 작곡교수를 지냈다.
    작품에 15곡의 교향곡 외에 현악4중주곡을 비롯하여 기악곡. 오페라. 오라토리오. 발레음악. 영화음악 등 많은 걸작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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