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깃발법'과 증기자동차의 쇠퇴
하지만 초창기 자동차가 처음부터 사람들의 환영 받았던 것은 아닙니다.
1825년 영국의 귀족 골즈워즈 경은 증기 엔진을 얹은 18인승 버스 두 대를 만들었습니다.
세계 최초의 버스로 기록된 이 차는 실내에 6명이 타고 나머지는 지붕에 올라타는 2층 버스였습니다.
여전히 런던을 상징하는 빨간색 2층 버스의 원형이 이미 19세기 초반에 등장했던 셈입니다.
하지만 무게만 자그마치 18톤이나 나간 이 육중한 버스의 최고시속은 20km에 불과했습니다.
특히나 증기 버스들은 보일러에서 매연과 증기가 쉴새없이 뿜어져 나오고 소음 문제도 심각해 런던 시민들의 원성을 사곤 했습니다.
사고도 적지 않아 보일러가 폭발하거나 마차와 충돌해 사람들이 목숨을 잃고 다치는 일까지 일어났습니다.
자동차에 손님을 뺏긴 마차업자들은 이 기회를 놓칠세라 사람의 생명을 위협한다며 자동차의 위험성을 크게 부각시켰습니다.
결국 영국 의회는 1865년 세계 최초의 자동차법인 '붉은 깃발법(Red Flag Act)'을 만들기에 이르렀습니다.
'붉은 깃발법'의 내용은 대략 이러했습니다.
"1대의 자동차에 반드시 3명의 운전수를 태운다. 그 중 한 명은 낮에는 붉은 깃발을, 밤에는 붉은 등불을 차량을 앞서야 한다."
"증기를 방출해서는 안 되고 시가지의 최고속도는 3.2㎞, 교외는 6.4㎞ 이하로 제한한다"는 등의 내용이었습니다.
1896년까지 시행된 붉은 깃발법은 대다수 시민들의 안전을 우선시한 당대 최고의 민주국가인 대영제국의 명성에 걸맞는 법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아니러니하게도 이 민주적인 법은 한창 꽃을 피우던 증기자동차의 기술 발전을 크게 위축시킨 장애물이 됐습니다.
뿐만 아니라 산업혁명의 기수이자 증기자동차의 시발국이었던 영국이 자동차 산업의 주도권을 독일과 프랑스 등 이웃 나라들에게 빼앗기게 된 결정적인 전환점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 이후로 줄곧 자동차 산업의 변방에 머물고 있는 영국으로선 상당한 아쉬움이 남는 대목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증기자동차는 증기가 나올 때까지 기다려야 하고 보일러가 무거워 속도를 내기가 어려웠던 터라 영국의 기술자들이나 운송업자들은 증기자동차의 사업성에 회의를 품게됐고 하나 둘, 이 분야에서 철수하고 말았습니다.
'붉은 깃발법'이 이처럼 잠시 영국 주도의 증기자동차의 쇠퇴를 불러오긴 했지만 하지만 필요는 역시 발명의 어머니였습니다.
증기자동차에서 눈을 돌린 발명가들은 보다 가볍고 성능 좋은 내연기관 자동차를 연구하기 시작했고 머지않아 한 단계 큰 도약을 이뤄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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