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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이 첫 만남과 같다면...

 

어찌 삶의 이치를 이처럼 단 한 문장에 녹여낼 수 있단 말인가.

만남의 그 절절한 사연을 담은 시한구절을 놓고 며칠 밤을 지새웠다.

만남은 운명을 바꾼다. 누구를 만나는 가에 따라 그 사람의 삶이 달라진다. 우리가 교류하는 사람이 누가 되느냐가 중요하다.

운명적인 만남을 들먹일 때 남녀 간의 사랑만을 얘기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오늘 아침, 조안 바에즈의 ‘도너도너도너’ 노래를 들으면서

차를 나눈 사람이 혹 운명적인 사람이었을까.

지난 밤, 비즈니스 미팅에서 가볍게 악수하며 지나쳤던 사람이

혹 운명적인 사람이었을까.

만남이 삶을 지배한다.

속칭 ‘만남의 운명학’이다.

만남의 운명학은 두 가지 속성을 갖고 있다.

 

하나는 물듦이다.

붉은 것을 가까이 하면 붉어지고,

검은 것을 가까이 하면 검어지는 것이 바로 물듦이고,

이는 진리이다. 향을 싼 보자기는 여러 겹 싸두어도 향내가 나고,

생선을 싼 보자기는 비린내가 나는 법이다.

비린내 나는 보자기는 아무리해도 씻어지지 않는다.

물듦의 속성을 아는 이는 그래서 사람을 함부로 만나지 않는 것이다.

착한 사람을 만나면 착해지고

악한 사람을 만나면 악해지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다른 하나는 깊이다.

스쳐지나가는 바람처럼 얕은 만남도 있고,

바다 속처럼 깊은 만남도 있다.

만남의 깊고 얕음에 따라 만남의 운명이 천차만별로 달라진다.

깊이를 재는 도구는 이익이다.

이익을 내보였을 때 반응을 보면

그 사람과의 만남의 깊이를 미뤄 헤아릴 수 있다.

정도에는 원칙, 균형, 사랑, 헌신, 희생 등의 개념이

내포되었음을 짐작할 일이다.

 

만남의 두 가지 속성, 물듦과 깊이 통해 만남의 운명학은 작동된다.

만남이 그 거대한 힘을 발휘하는 것이다.

역사는 만남으로 이뤄져왔다.

홀로 역사를 만든 경우는 단 한 번도 없다.

 

사실관계를 그린 중국의 역사소설 ‘초한지’의 주인공을 보자.

초한지에서 이야기의 한 축인 유방에게는

장량 소하 진형 한신 등 믿고 맡길 수 있는 부하가 있었다.

유방과 그의 부하들의 만남은 말그대로 운명이었다.

죽음을 불사할 각오를 한 깊은 만남이었다.

 

반면 초한지의 또 다른 한 축인 항우는 혼자였다.

책사 범증 마저 버렸으니 그에게는 사람이 없었다.

역사는 유방에게 한나라를 세우는 임무를 주었고,

항우는 비참한 자살로 마감하게 했다.

초한지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무엇일까. 사람이다.

정도를 지키고 인심을 얻은 유방을 도와주는 사람은 많았고,

정도를 저버린 항우를 도와주는 사람은 적었다.

초한지는 도와주는 사람이 많은 사람이 불리한 여건 속에서도

전쟁에서 이기는 법을 제시하고 있다.

유방 혼자서는 항우를 이길 수 없는 것이다.

이를 하나로 정리해보면 이렇다.

 

천하를 얻으려면 먼저 사람을 얻어라’는 것이다.

성공한 사람은 자기 주변에 자신의 단점을 보완할 수 있는

뛰어난 사람을 두고 있다.

 

즉 ‘사람경영’을 하고 있다.

아무리 뛰어난다 한들 혼자서 ‘북 치고 장구 친다’는 말은 성립될 수 없다. 최소한 ‘위대한 성공, 위대한 역사’에 한에서 하는 말이다.

다만 혼자서 조그만 업적은 가능할 수 있을 것이다.

 

위대한 역사를 전개한 조선의 왕 세종대왕,

역시 현시대에 위대한 역사를 쓰고 있는 빌 게이츠에게는

뚜렷한 공통점이 하나 있다. 그것은 사람이다.

이 위대한 역사적 인물은 ‘사람경영’으로 시공을 초월해서 조우하고 있다.

 

이 두 사람은 사람경영과 관련된 유명한 일화가 있다.

사람경영은 사람과의 만남, 그리고 그 유지에 관한 전략이다.

 

왕실연구기관인 집현전에서 밤을 새고 연구를 하다

깜빡 잠이 든 신숙주에게 세종대왕이 용포를 걸쳐준 일화는

널리 알려져 있다.

이 일화와 관련해서 조선의 하늘을 바꾼 천문학자 이순지,

조선 고유의 음악을 만든 박연,

천재 과학자 장영실과 정초 등 한 시대를 풍미한 학자들이

세종대왕시절에 유독 쏟아져 나온 것을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빌게이츠에게는 오른팔로 불리는 아눕굽타를 영입하기 위해

그가 경영하는 기업을 통째로 인수한 유명한 소설 같은 이야기가 있다.

빌 게이츠의 사람경영으로는 마이크로소프트의 ‘캔디데이트 제너레이터’라는 인재전담팀이 있다.

약 300명으로 구성된 이들이 세계 각지에서 인재를 거둬들이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인재 중 70% 이상이 이곳을 통해 영입되고 있다고 한다.

 

세종대왕이나 빌 게이츠의 사람에 대한 애착을 보면 공자가 극찬한 인물인 주나라 주공을 떠올리게 한다. 주공은 사람을 무척 아꼈다.

자신을 찾아온 손님을 맞이하기 위해 한 끼 밥을 먹는 도중에도

세 번씩이나 밥을 뱉어내고 손님을 맞으러 달려 나가는가 하면,

한번 머리 감는 사이에도 세 번씩이나 젖은 머리채를 움켜쥐고 나갔다는

일반삼토(一飯三吐), 일목삼착(一沐三捉)의 고사의 주인공이

바로 주공이다. 기원전 12세기의 주공은 사람경영의 원조인 셈이다.

돈 좀 벌었다 하면 사람을 경시하는 요즘세태에 경종을 울리는 이야기이다.

 

사람경영의 핵심은 성숙한 인재와의 만남이다.

만남은 운명이다.

누구를 만나는 가는 운명에 달려 있다. 우연이 아니다.

알려진 것과는 달리 운명과 우연은 성격이 전혀 다르다.

 

운명에는 필연과 그 사람의 그릇의 크기가 포함돼 있다.

그 사람의 그릇의 크기에 따라 만나게 되는 사람이 정해진다.

그런 점에서 필연이라는 것이다. 동기상응(同氣相應)의 원리다.

선한 사람에게는 선한 사람이, 악한 사람에게는 악한 사람이 모이는 격이다. 소인이 군자를 거느릴 수 없는 것이고,

붉은 색이 파란색과 어울릴 수 없는 것이다.

 

같은 만남에도 그 사람의 그릇에 따라 깊은 만남이 있고 가벼운 만남도 있다. 만남의 운명학이 제대로 작동하려면 만남의 깊이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앞서 언급한 초한지를 다시 보자. 군사적 천하통일의 주역 한신은

원래 항우의 부하였다. 한신이 왜 항우를 버리고 유방을 택했을까.

만남의 깊이가 달랐기 때문이다.

천하를 놓고 만남의 깊이가 승자와 패자를 갈랐던 것이다.

 

역사를 굳이 언급하지 않더라도 만남은 우리들의 삶속에 깊이 파고들고 있다. 우리가 만나고, 교류하는 사람들이 우리들의 인생을 결정짓는 것이다.

교류하는 사람들, 즉 준거집단의 선택이 일의 성패를 좌우한다는 것은

여러 연구결과에도 나타나있다.

당장은 아니더라도 장기적인 관점에서 추적한 결과,

준거집단이 성공과 행복에 가장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는 연구보고이다.

 

그렇다면 누구를 만나는 가가 중요한 일이다.

아무하고나 인연을 맺을 수는 없다.

사람 인연에 대해서는 역경(易經)의 힘을 빌려보자.

역경의 64괘중 8번째 괘인 비괘는 왕을 보필하는 것을 기술했다.

비괘에서 말하는 것은 원영정(元永貞)이다.

 

원(元)은 크다는 뜻이다.

사람이 크고 작은 것은 책임감에서 비롯된다.

큰 사람이라는 것은 그가 얼마나 책임감을 지고 있는지를 살펴보면 된다.

 

영(永)은 변하지 않고 오래가는 것이다.

오래도록 지속하면 허물이 없다고 비괘는 설명하고 있다.

 

정(貞)은 올바른 원칙이다.

이익 앞에 의를 저버리는 세태에서 이는 중요한 인물감정 포인트이다.

 

원영정은 사람과의 만남에서 중요한 포인트이다.

원영정의 입장에서 상대방과 자신을 둘러보면 문제될 것이 거의 없다.

사람을 보는 눈이 부족해 실패한 일은 상대방을 탓할 일이 아니다.

스스로를 되돌아 볼뿐이다.

사람경영과 관련, 하나 짚어야 할 것이 있다.

결합의 오류다.

결합의 오류는 모든 요소에서 가장 좋은 것만 뽑아서 합하면

최상의 결과를 얻을 것이라고 예상하지만

실제는 나쁜 결과를 얻게 된다는 이치를 말한다.

 

결합의 오류는 실생활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최상의 김치와 최고의 돼지고기,

그리고 다양한 양념들을 푸짐하게 섞는다고

최상의 김치찌개가 되는 것은 아니다.

스페인 축구클럽 레알 마드리드도 결합오류의 적절한 예가 될 것이다.

세계 최고의 선수들로 구성된 이 팀은 올해 유럽제패는커녕

스페인리그도 정복하지 못하고 있다. 결합오류가 작동한 결과이다.

굳이 결합오류를 얘기한 것은 사회적으로 알려진 사람들에게만,

권력과 부를 갖춘 사람들에게만 열광하지 말라는 것이다.

 

사람 보는 눈이 중요하다.

동양의 고전 논어는 배움에서 시작, 사람을 알아보는 것을 끝난다.

 

명을 알지 못하면 군자가 될 수 없고 예를 알지 못하면 설수가 없고 말을 알지 못하면 사람을 알 수 없다.’

 

논어의 마지막 구절이다.

성현도 사람을 알아보는 것의 중요성을 재삼 강조했다.

서두에 나온 시를 다시 음미해본다.

 

인생이 첫 만남과 같다면.’

 

중국 청나라 초기,

사인(詞人)인 납란성덕의 음수사(飮水詞)에 나오는 구절이다.

남녀 간의 사랑을 그린 시지만 만남의 오묘한 모든 이치가

이 한 구절에서 찾아볼 수 있다.

 

첫 만남과 같은 사랑스런 마음으로,

첫 만남과 같은 자연스런 마음으로,

첫 만남과 같은 텅 빈 마음으로 살아간다면

만남의 운명학은 능히 그 위력을 발휘하고도 남을 것이다.

 

허나 첫 만남과 같은 삶은 다수의 사람들에게 주어지지 않는다.

그들은 붉은 마음,

즉 적심(赤心)의 가치를 알지 못하거니와 알려고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아니 오히려 꺼려한다.

 

적심은 상대방에게 마음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을 말한다.

적심의 배경은 살벌한 전쟁터이다.

적심은 태생그대로 목숨을 담보로 한 건곤일척의 심정이다.

생생하게 살아 숨 쉬는 삶에는 한 점 거짓스런 마음이 있어서는 안 된다.

그게 승자의 길이자, 존재의 길이다.

 

‘인생이 첫 만남과 같다면’은 적심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할 것이다.

만남의 운명학 마지막 구절은 ‘적심’이다.

 

- 정보철 컬럼_성공의 조건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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