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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히틀러는.. 그의 육체는 현실에 있지만 그의 정신만큼은 도무지 현실과 동떨어진 사람이었소.
이를테면 37년 파리 건축박람회에 출품해서 대상을 차지한 43만명이 들어간다는 거대 사원이라던가,
그가 그려놓은 스케치에서 그 흔적을 찾아볼수 있소. 개선문보다 3배큰 게르만 개선문, 높이 180미터의 초대형 아치라던가.. 가장 급박한 현실에도 도무지 급해하는 모습을 찾아볼수 없었고, 취미는 베르히테스가덴 별장에서 딴생각 하기였소. 자신의 말로는 거기에서 에너지를 충전하고 온다는데, 아마도 자연속에서 갖은 망상을 다함으로써 될되로 안되는 현실의 지침에서 벗어나는 것이었던듯 싶소. 나치당 절멸의 위기에도 그 별장만큼은 꼭 갔을 정도였으니 말 다했다 아니할수 없겠소.
그런 그의 정신이 현실세계의 맛이라도 보는 때가 있었소. 대략 그가 연설할 때나, 그가 모든것을 진두지휘할 때, 그리고 그가 벌인일이 결정적으로 잘 되는 때였소. 즉 즐거울 때만 잠시 현실에 돌아왔다는 것이오.
윗사진 당시, 독일은 각종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개최하고 경제가 발전하고 고용창출이 늘어났으며 유대인들의 재산을 빼앗아 나누어줌으로써 독일인들의 가계가 나아졌고, 대외적으로는 오스트리아-체코등을 병합하고 전 세계적으로 과거 민주주의의 이념이 그랬던 것처럼 독재의 우수성이 사람들에게 급속히 받아들여져 가던 시절이었소.
과거 연설당시 히틀러가 군중들에게 한 말이 있었소. "여러분들은 나를 통해서만 자신을 나타낼수 있으며, 나 또한 여러분들을 통하지 않고는 존재할수 없습니다." 이 말이야말로 그의 근원에 대해 가장 근접한 것이라 단언할수 있겠소. 실제로 그가 국민의 인기를 한몸에 받을 당시, 그는 알수없는 에너지로 거침없이 일처리를 하였으며 모든 반대파들에 앞서 고집을 피우고 그 고집의 결과가 반대파들의 주장보다 우월함을 거침없이 증명해 나갔었소. 국민들 또한 바이마르 공화국 시절에 "귀찮은 투표"보다는 "대규모 축제"에 참가하는 것을 더 바람직하고 국가권력에 근접하는 행동이라고 여겼소. 즉 국민들은 히틀러에게 에너지를 주고, 히틀러는 그 에너지를 증폭시켜 국민들에게 되돌리고 또 국민들은 더큰 에너지를 그에게 주고 히틀러는 더욱더 큰 에너지로 국민들에게 보답하는 본햏이 주창한 이른바 "오바력"이론의 실례라고 할수 있겠소. 오바력이란 오바쌩쑈를 할때 나오는에너지란 뜻이라오.
그 에너지의 극한은 작게는 연설장의 아가씨들이 감정의 극한을 못이겨 실신하는 것에서부터, 영국 프랑스등의 나라마저 히틀러를 경탄의 눈으로 보고 유사정당까지 창설될 정도였소. 그리고 독재의 이념이 세계를 지배하는 듯한 인상을 심어주던 나날이었소. 가히 극한의 에너지가 전 세계를 휩싸던 나날이었던 것이오. 처음 히틀러를 "모방자 주제에"라고 경멸하던 원조 파시스트 무솔리니도 그의 에너지에 먹혀버리고 위성국 지도자 신세가 될 정도였소.
그리고 전쟁이 일어났소. 다 아시는 바와 같이 독일은 폴란드-노르웨이를 제압하고 사상 최대의 숙적 프랑스를 한달정도에 굉침시키는 놀라운 위력을 보여주었소. 당시 독일의 프랑스에 대한 국민감정은 굉장했소. 지금의 우리와 일본과 다를바 없을 정도였소. 당시 전 국민, 공산당 잔존세력도, 교회, 사회민주당 잔존세력조차도 하일 히틀러를 외치며 거리를 행진할 정도였소. 히틀러는 파리를 몸소 방문하여 지배자의 쾌감을 맛보았고, 프랑스에게 줄수있는 최대한의 굴욕을 주었소... 가히 환상같은 나날이엇지만, 히틀러 자신에게는 이미 수천번도 더 행했던 일들을 오감이 한번 더 느끼는 것에 지나지 않았소. 그리고 얼마가 지나...
영국본토 항공전에서 패배하고 대소전이 이상하게 돌아가자 그는 갑자기 국민들과의 접촉을 뚝 끟어버리오.
그의 신체는 여전히 오바력을 필요로 하고 있었지만 연이은 패배로 돌아선 국민들의 눈총이 너무나도 두려웟던 것이오. 오바력을 받지 못한 그는 점점 현실에서 멀어졌소. 다시 청년시절의 몽상가로 되돌아가 버린 것이오. 베르히테스가덴이나 동프로이센의 총통대본영에서 은둔하며 지내기 시작한 그는 점점 말이 없어지고 우울한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소. 히틀러 에너지는 고갈에 다다른 것이었소.
하지만 그의 신체는 여전히 오바력을 필요로 하여, 측근들을 모아놓고 수다를 떠는것을 즐겼지만 측근들의 증언에 의하면 "그가있는 자리에서 기분이 유쾌한 자는 극소수에 불과하였다"고 하오. 모두 알다시피 오바력이란 진실된 청중들의 지지와 후원에서 나오는 법이오. 그가 아무리 수다를 떨어도 돌아오는 것은 과거와 같은 에너지가 아닌, 시간단위의 수다로 지친 몸과 마음, 그리고 거짓으로 경청하는 그들에 대한 짜증이었소. 하지만 그는 오바력을 갈구하여 계속해서 수다를 떨었지만, 그때마다 언제나 공허함과 허망함, 그리고 천근만근이 된 자신의 몸밖에 없었소. 결국 점점 히틀러는 스트레스를 받으며 상상에 몰두하기 시작했소. 전쟁이 끝나면 베를린 재건사업, 아치의 건설, 대사원의 자재는 무엇으로 할까... 이런 상상에 계속해서 날아드는 패배의 급박한 비보는 엄청난 스트레스덩어리에 불과했소. 그는 이런 현실을 생각하기도 싫었던 것이오. 오직 상상만이 그를 받쳐주는 유일한 주춧돌이었소. 다 알다시피 그는 무조건 절대 사수만을 남발했던 것은 잘 아실 것이오. 과거의 에너지 히틀러엿다면 있을수 없는 일이었소.
그의 이런 심신의 빠른 노화에 기여한 것이 있었으니 그의 주치의인 모렐박사의 엉터리 악이었소. 모렐박사의 약은 그나마 남아있던 히틀러의 사고회로를 망가트리는데 결정적 역할을 하오, 각성제, 해열제, 진통제와 각종 향정신성 약품을 일회에 십몇알씩 복용하면, 그것도 몇년이상 계속하면 사람이 어떻게 되겠소? 나중에 보다못한 의사들이 모렐의 약을 먹지말라고 했지만, 그때마다 돌아오는것은 히틀러의 분노였소. 모렐의 몸을 풀어주는 약은 -설사 그것이 치명적일지라도- 그에게 있어서는 상상이라도 편하게 할수있게 해주는 유일한 생활의 활엽수였던 것이오. 괴벨스만큼은 그의 상상에 별 위화감없이 합류할수 있었소.
그 처참한 결과물이 바로 두번째의 사진이오. 왼쪽손은 마비상태에, 잃어버린 눈의 광채, 굽은 허리, 덜덜떠는 오른손, 움직일 힘도 없이 질질 끌고다니는 다리.... 그는 존재만으로도 분위기를 가라앉히는 그런 존재가 되고 말았소.
그런 그는 패망하기 한달 전부터 극적으로 제정신을 되찾소. 말하자면 현실세계로 어렵사리 돌아왔다는 거요. 그런 그는 냉전체제와 독일의 군사적 중요성을 예언하고 앞으로 독일이 살아남을수 있는 방책을 강구하지만 눈앞의 현실은 너무나도 절망적이었소. 그리고 그의 몸은 가장 큰 장애물로 다가와 있었소. 이미 제스추어 하나도 소화해내지 못하는 목각인형같은 육체는 다시금 그를 반비현실로 집어넣어 버리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는 최후의 사고능력을 짜내어 유명한 최후의 연설을 행하오. 내용은 앞으로 냉전시대가 올것이고 유대인들은 중동에서 세계대전의 불씨를 만들어 인류를 자신의 지배하에 넣을 것이라는 내용이었소. 그리고...
전쟁이 끝났소.
히틀러가 비록 오랜시간 국민들과의 접촉을 피했다지만 그의 카리스마와 오바력은 너무나도 강력해서, 나치독일이 패망하기 전까지는 계속해서 독일국민들에게 씌워 있었던 듯하오. 실제로 독일인들의 기록중 수많은 보고가 마치 "꿈에서 깨어난 느낌" "마술에 걸려 있었던 느낌"이라고 서술하고 있소. 그리고 독일인들은 빠른 속도로 그를 잊기 시작했소. 그리고 지금이 되었소.
하나의, 세계라는 무대와 인류라는 청중과 함께했던, 히틀러라는 이름의 배우가 연기했던 한 쇼의 종말이었소. 앞으로, 200년 후든 2000년 후든, 차원을 달리하는 거대한 연극은 사람들의 뇌리속에 영원히 남아있을 것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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