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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2013.10.12 

[줄리아 투자노트] 폭력적이지 않은 '사이코패스 성향'의 사람들

 

 

최근 몇 년 사이에 '나쁜 남자'란 말이 유행하고 있다. '나쁘다'는 것은 나쁜 것인데도 '나쁜 남자'란 말은 사람을 끌어당기는 묘한 매력이 있는 남자란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소설이나 영화 속에는 악마 같이 나쁜 남자지만 매력이 철철 흘러 넘치는데다 알고 보니 내 여자에겐 한없이 부드러운 순정파였다는 설정의 인물이 자주 등장한다.

나쁜 여자도 만만치 않다. 국내에서 영화로도 만들어진 일본 추리소설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의 '백야행'에는 전형적인 나쁜 여자가 등장한다. 손예진이 분한 이 나쁜 여자는 자기를 위해 살인까지 서슴지 않던 남자의 죽어가는 모습 앞에서도 표정 하나 바뀌지 않은 채 "전 모르는 사람이에요"라고 말할 정도로 냉혈한이다.

이처럼 나쁜 남자, 나쁜 여자란 말이 유행하고 이 나쁜 사람들이 영화나 드라마, 소설 속에 끊임없이 비중 있게 다뤄지는 이유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매력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혹은 많은 사람들은 나쁜 남자, 나쁜 여자에게 끌리는 것일까. 사람들의 마음을 끈다는 것은 매우 큰 무기다. 사람의 마음을 끌면 그만큼 성공할 수 있는 가능성도 높아진다. 이런 식으로 논리를 전개해가다 보면 결국 나쁜 남자, 나쁜 여자가 이 사회 속에서 성공하기도 더 쉬운 것일까, 라는 의문이 든다.

물론 영화나 드라마, 소설은 대부분 나쁜 사람이 몰락하고 착한 사람이 고난 끝에 진가를 인정 받는 권선징악으로 결론이 나지만 과연 현실에서도 그런 것일까. 이 사회에서 돈을 많이 번 부자들이 대부분 착한 사람들일까. 사회구조 내 계층 사다리의 꼭대기까지 도달한 성공한 사람들이 모두 착한 마음으로 그 자리까지 올라간 것일까. 살다 보면 끊임없이 이런 회의가 드는 것이 사실이다.

최근 이런 마음에 석연치 않긴 하지만 해답을 주는 책을 만났다. '천재의 두 얼굴 사이코패스'. 이 책에서 분석하는 사이코패스가 모두 잔인하게 사람을 죽이는 연쇄살인범은 아니다. 이 책은 사이코패스적 성향이 있지만 폭력적이지 않은 정상인들이 우리 사회 곳곳의 직업군에서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 주목했다.

흔히 사이코패스라고 하면 폭력적인 살인마를 떠올리지만 이 책에 따르면 사이코패스란 죄의식이 없고 무자비하긴 하지만 집중력이 강하고 남들이 뭐라 하든 아랑곳하지 않는 담대한 마음과 강인한 정신력을 갖고 있으며 한번 결심한 일은 빠르게 행동에 옮기는 실행력을 갖추고 있다.

이 책의 저자인 케빈 더튼은 이런 점 때문에 사이코패스는 과거에도 사회에서 영웅시되는 경향이 있었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부족이나 국가의 안위를 위해 적이라면 단 한치의 망설임이나 주저함 없이 처단하는 단호한 잔인함이 추앙 받았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게다가 현대 사회는 점점 더 사이코패스화되어 가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미국 하버드대학의 심리학자 스티븐 핑커는 '우리 본성의 더 나은 천사들'이란 책에서 현대 사회는 과거에 비해 폭력이 현저히 줄었다고 주장했지만 동시에 현대 사회가 점점 더 사이코패스적인 성향을 띠고 있다는데도 동의한다.

핑커는 현대 사회가 사이코패스화되어 가는 원인으로 문화 주도층의 변화를 꼽았다. 과거 중세시대까지만 해도 성직자, 철학자, 예술가, 귀족 등 품위를 지키는데 중점을 두는 계층이 문화를 이끌었으나 현대 사회에서는 품위보다는 재미와 자극을 추구하는 유명 연예인, 언론 매체, 비디오게임 등이 문화를 주도하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요약하자면 과거든 현재든 사회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냉정함과 단호함이 필요하며 이는 어느 정도의 사이코패스적 성향과 일맥상통한다는 것이 이 책의 주장이다.

이 책은 아울러 사이코패스적 성향이 성공에 도움이 되는 이유로 목표를 제외한 다른 어떤 것에는 눈길도 주지 않는 무자비함, 목표에 대한 강력한 집중력, 남에게 상처 주는 데도 무감각하지만 자신이 받는 상처에도 별 감흥을 느끼지 못하는 강철 같은 강인함, 지나간 일에 연연하지 않고 앞으로 다가올 미래의 일도 두려워하지 않는, 오로지 바로 이 순간에만 집중하는 현실 직시 능력 등을 꼽았다.

흥미로운 점은 사이코패스의 강점으로 꼽히는 이런 요인들이 성자에게서도 공통적으로 드러난다는 점이다. 오로지 현실만을 직시하고 당장 눈 앞의 것에 집중하라는 원칙은 종교나 정신수양법에서 공히 주장하는 원칙이기도 하다.

실제로 심각한 위협이 느껴지는 상황에서 사람들의 두뇌와 감정이 어떤 반응을 하는지 연구한 결과 대부분의 사람들은 심각한 동요를 느꼈으나 사이코패스와 수양을 오래 한 티베트 승려는 똑같이 별다른 동요를 느끼지 않은 채 담담했다.

흔히 사회 현실이 비정하다고 한다. 이 책의 내용에 따르면 이런 비정한 사회에서 성공하기 위해 꼭 비정한 사이코패스적 성향을 갖출 필요는 없다. 다만 현실을 직시하고 감정을 조절할 수 있는 자기절제력을 갖추는 것만으로도 성공 확률은 크게 높아진다.

많은 사람들이 '나쁜 남자' '나쁜 여자'에게 끌리는 이유는 그들이 혼란스런 사건이나 이슈 속에서도 다른 대다수 사람들과 달리 차분하고 담담하게, 그래서 냉정하게 판단하고 행동하기 때문일 수 있다. 사람들이란 자신이 갖지 못한 것을 갈구하기에 일희일비하는 대다수 평범한 사람들에겐 이런 냉정함 혹은 차분함이 매력으로 다가오는 것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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