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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교적인 관점에서 진리는 무엇이고 그것과 사주와는 어떤 관계가 있는지 또 운명과 숙명의 관계는?


1. 하나는 깨달음을 얻기 전까지는 사주팔자대로 살고,

깨달음을 얻은 후에는 마음만 먹으면 사주팔자와 무관하게 살 수 있다는 것이고,

2. 정해져 버린 숙명과 정해지지 않은 운명이 있어,

숙명은 바꿀 수가 없는 것이고, 운명은 인간의 의지에 의해 바꿀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두가지를 근거로 설명해 보면

부처가 되기까지는 사주팔자에 영향을 받지만 부처가 된 후에는 사주팔자와 무관하게 살 수도 있다.

하지만, 부처님은 중생들을 가여워해서 삼계에 함께 살아가셨다.

즉, 부처님이 되면 사주팔자에 영향을 받지 않을 수도 있지만 부처님은 중생을 가엽게 생각하셔서 사주팔자의 영향대로 살아가신 듯 보인다.

세속제와 승의제라는 것이 있는데, 사주팔자는 세속제와 다르다.

깨달음을 얻으면 승의제에서 살아간다고 한다.


더 자세한 것은 다음글을 참고하라. 낭월 명리학당의 명상일기란에서 퍼온 글이다.

덕천막부의 말기에서 명치시대에 걸쳐 일본인 사이에 많이 
보급된 책 중에 <<음즐록(陰騭錄)>>이라는 책이 있다. 
이 책은 서양의 윤리학자와 철학자들 사이에서도 '위대한 인생의 다이내믹한 학문'으로 대단한 관심을 끌었었다. 
'음즐록(陰騭錄)'의 '즐'자는'정한다'는 뜻으로 '음즐록(陰騭錄)'은 하늘이 정한 즉 크나큰 천명의 작용을 말한다. 

 

임진왜란때 조선의 요청으로 왔던 명나라 원군사령관 이여송을 따라온 
사람 중에 원료범이란 사람이 있었다. 
그의 원래 이름은 학해(學海)였다. 
그는 어릴 때 일찍이 아버지를 여의고 편모슬하에서 자랐다. 
중국의 지식계급은 과거시험을 쳐서 진사가 되는 것이 관례였다. 
한 사람의 진사를 내기 위해 온가족과 온친족이 힘을 기울일 만큼 
과거에 합격하는 일은 대단히 어렵다. 
원료범도 과거를 쳐서 진사가 되고 싶었으나 집이 가난해서 
공부할 여유가 없었다. 
빨리 한 사람 몫의 일을 해서 편모를 봉양해야만 했다. 
가장 손쉽게 집안을 꾸려갈 수 있는 길이 의사라는 어머니의 말대로 
의사공부를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공씨라는 노인을 만났다. 
모습이나 인격이 훌륭하게 보이는 이 공노인은 원료범을 찬찬히 뜯어 
보더니,"넌 무슨 공부를 하고 있느냐?"고 물었다. 
원료범은 이러이러한 까닭으로 의사공부를 하고 있다고 대답하자 
공노인은,"거, 아깝다.자네는 진사가 될 수 있는 훌륭한 관상을 타고났네.

자네는 그러한 운명의 소유자란 말일세,자네는 몇살이 되면 
몇번째로 과거에 급제하고 몇년 몇일날에 천명을 다할걸세.그런데 
자네는 자식이 없구만"했다. 
공노인은 이렇게 원료범의 일생을 예언하였다. 
사람이란 알 수 없는 미지의 세계를 탐구하려는 욕망을 갖고 있다. 
모든 미지의 세계 중에서 가장 매력있는 것은 자기자신이다. 
자기를 안다는 것이 가장 매력적이다. 
그러므로 시답잖은 점쟁이나 예언자 따위가 자기에 대해 이야기하면 마음이 움직인다. 
사람이란 조금만 복잡한 일에 부딪혀도 평소에 큰소리치던 
기백은 어디 가고,용한 사람이 있다는 소리만 들어도 찾아가 물어볼 정도로 약하다. 
그만큼 자기자신에 대해 가장 알고 싶어한다. 
원료범은 크게 감격해서 공노인을 집에 데려가 대접해 보낸 다음, 
열심히 공부해서 과거에 응시했다. 
그랬더니 신기하게도 공노인의 예언대로 몇 월 몇일에 몇번째 성적으로 
급제했다.제 2차 시험도 예언대로 합격했다. 
그 뒤로 모든 일이 공노인의 예언대로 어김없이 맞아떨어졌다. 
공노인의 말대로 그는 사회적인 성공은 거두었으나 자식은 없었다. 
"사람의 운명이란 미리 정해져 있으므로 이렇게도 저렇게도 할 수 없다.

출세도 하고 싶고 떼돈도 벌고 싶은 갖가지 희망에 부풀어 모두들 안달복달을 하지만 어리석은 짓이다.

나는 자식도 없고 몇년 몇월일에 천명을 마친다는 것까지 정해져 있으니,

이 정해진 짧은 인생에 무엇 때문에 부질없는 일을 두고 애를 쓸 것인가!" 
이렇듯 원료범은 철저하게 운명론자가 되어버렸다. 
그래서 다른 사람과 경쟁해서 출세하려고도 돈을 벌려고도 생각하기 않았다.

젊은 나이에 이미 인생을 체념한 점잖은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원료범이 무슨 일로 남경 근처의 절에 묵게 되었는데 
그 절에 운곡(雲谷)이라는 선사가 있었다. 
어느 날 운곡선사가 원료범을 부르더니,

"그대가 여기 온 뒤로 살펴보았더니 나이답잖게 사람이 점잖더군요.어떤 수양을 했길래 그런 품격을 지니게 되었는지 참고로 들려줄 수 없겠소?"라고 물었다. 
원료범은 깜짝 놀랐다.

사람이란 본능적인 여러가지 욕망,이를테면 정욕이라든가 번뇌 따위가 
없어질수록 또는 더 높은 것을 지향할수록 차원 높은 존재가 되므로 
속인으로서는 알 수 없는 일종의 신비스런 것이 생긴다. 


의사의 경우도 그렇다. 술마시고 고기 먹으면 진찰할 때 손끝이나 눈의 감각이 마비된다고 한다.

이런 일은 뛰어난 의사들이 대개 경험한 바다. 

이러한 일은 의사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도 느낄 수 있다. 

원료범은 일종의 체념에 도달해 있었으므로 보통 청년이 갖고 있는 
야망이 빠져 달아난 상태였다. 
그래서 맑고 침착한 품격을 이루고 있었다. 
나이 젊은 사람에게서는 보기 힘든 모습이었다. 
그 점이 운곡선사에겐 기이하게 비쳤던 모양이다. 
원료범은 사실대로 대답했다. 
"실은 저는 기묘한 체험을 겪었습니다.

소년시절 의술공부를 하고 있었는데 어떤 노인이 제 인생의 전정을 낱낱이 예언 했습니다. 
그런데 그 뒤로 예언은 한번도 어긋난 적이 없었지요. 
그래서 부질없는 일은 체념하고 유유히 자연에 맡기며 살기로 마음먹었지요.

그런 점이 선사에겐 다른 사람과는 다르게 비쳤나 봅니다" 

 

그러자 운곡선사는 갑자기 태도를 싹 바꾸더니, 
"뭐,그래?  그렇다면 자네는 몹쓸 사람이군.이건 크게 잘못 봤군." 씹어 뺕듯이 말했다.

뜻밖의 말에 원료범은 "그건 또 무슨 말씀인지?"라고 되물었다. 
그러자 운곡선사는 자세를 가다듬고서 이렇게 말했다. 
"그대의 체념이나 깨달음이란 극히 단면적이며 저급하고 유치한 걸세. 
인간에겐 운명이란 게 있지. 
그러나 그 운명이란 것이 무엇인지 일평생 파고들어도 알 수 없는 걸세. 
우리가 한평생 학문수업 끝에 제 운명이 어떤 것인지 
탐구한 뒤에야 비로소 제 운명이 이런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네. 
관 뚜껑을 덮고 난 뒤에야 정해지는 걸세. 
그 따위 한 노인의 관찰이나 예언으로 정해져 버리는 무의미 한 것은 결코 아닐세.

 

사람은 운명이란 것을 갖고 있지. 
하지만 운명은 학문에 의해 끝없이 밝혀지는 것이며 수업에 의해 무한히 창조되는 걸세. 
운명은 하늘이 이루는 것이면서 또한 스스로 만드는 걸세. 
무엇 때문에 많은 성현(聖賢)들이 생애를 걸고 학문수업을 했겠나? 
만약 자네 말처럼 간단하게 인간의 운명이 정해져 있는 것이라면 
그 많은 성현들이 부질없는 일을 두고 매달린 꼴이 되는 걸세.

자네의 운명, 즉 자네의 소질과 능력과 작용이란 게 그렇게 간단하단 말인가? 
그래 가지고서야 자네는 쓸데 없는 인간이라고 생각하지 않는가?" 

운곡선사의 말을 듣고 난 원료범은 전신에 식은땀이 
흐르고 소스라치게 놀라 처음으로 자신을 발견하고 눈을 떳다.

"자네는 의(義) 리(理) 재생(再生)의 몸이다. 
의란, 양심이 긍정하는 구체적 실천을 말하며 
리란, 물질의 성립원리를 말하는 것일세. 
즉 우리가 사색하고 실천해서 나날이 창조적 생활을 
영위하는 주체, 이것이 의리재생의 뜻이지. 
끝없는 사색과 실천을 통해 나날이 새로운 창조생활로 
학문수업을 해보게나. 
그렇게 하면 자네란 인간이 또 어떻게 변해 갈지 알 수 없네. 
자네의 인생이 어떻게든 변화해 가지 않을 수 없을 것, 
이것을 일러 입명(立命)이라고 하네. 
즉 여태까지 타율적인 운명에 지배되고 숙명에 지배되고 있었지만 
오늘부터 자유의 몸이 되어 자기자신과 인생을 창조해 보게. 
그렇게 하지 않고서는 자네의 운명이 무엇인지 알 수 없는 걸세." 

운곡선사의 말을 다 듣고 난 그는 홀연히 새로운 생애를 시작했다. 
그랬더니 이상하게도 그때까지 한 번도 어긋난 적이 없던 
공노인의 예언이 빗나가기 시작했다. 
무자식 팔자라더니 아이도 태어나고, 
죽는다던 해를 넘기고도 건강하게 살았다.

 
그래서 그는 인간이란 얄팍한 운명관에 빠져서는 안된다. 
끝까지 탐구하고 끊임없이 이상을 좇아 실천해 나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러한 철학을 갖고 이렇게 수업하라는 것을 
자식들에게 책으로 써서 남겼다. 

 

이를 두고 요범4훈(了凡四訓)이라 한다. 
요범은 원료범의 호이다. 

-- 이상,원료범의 교훈을 마친다. 
-- 공노인같은 분도 이러할진대,요즘 운명학이란 어디에 쓰겠는가? 
-- 이글을 읽는 이라도 허술한 운명관에 빠지지 마시기를.... 
-- 사주로 인간의 운명을 푼다는 것 자체가 허술하기 짝이없다. 
-- 다만, 공부를 위한 것은 될 수 있다. 


------------------------------ 퍼온 글 끝 ---------------------------------

하지만, 깨닫기 전까지는, 즉 붓다가 되기전까지는 세속제의 영향을 받고 살아간다는 것이다.

하지만, 붓다가 되어 성인이 되면 승의제라고 하는 세계 속에서 살아가며 대자유를 얻는다고 한다.

마음만 먹으면 사주팔자에 영향을 받지 않고 살아간다는 것이다. 
또하나의 증험적 이론에 의하면, 일정하게 정해진 숙명이 있고 정해지지 않은 운명이 있다고 한다.

숙명과 운명이라는 두가지 흐름이 병렬적으로 삶에 진행된다고 할 수 있다. 그 형태가 어떤 형태로 진행되는지는 구체적으로 알 수 없지만.

결론적으로 이론 1 이 맞는지 아니면 이론 2가 맞는지 또는 1과 2가 종합된 것이 맞는지 잘 모르지만 이런 점을 실제로 체득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수행과 학문을 닦고 깨우쳐 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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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원광대 조용헌 교수님의 글이다.

이 글에 의하면 덕을 쌓거나 복을 지어 선업을 쌓으면 운명을 바꿀 수 있다고 한다.

예를 들어, 오늘 저녁에 죽을 사람이 오늘 아침 모든 돈을 다 가난한 사람에게 줘버리고 절에 들어간다면 죽음을 면할 수 있을 것이다.

 

원료범은 적덕지가 필유여경이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고 한다. 즉, 덕을 쌓는 집안은 경사가 있을 것이라는 말이다.

-- 조용헌 교수님의 글 [펌] --

인간의 운명을 연구하면서 가장 당혹스러운 일은 그 사람의 타고난 운명이 좋지 않을 때이다. 사주팔자가 좋지 않은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나쁜 운명을 좋은 운명으로 돌리는 방법이 있는가? 

있다! 그 방법과 사례를 기술한 책을 이번에 소개하고 싶다. 

명대(明代)의 학자 원료범(袁了凡.1533~1606)이 자식을 훈계하기 위해 남긴'요범사훈'(불광출판부)이 바로 그 책이다.

중국인들 사이에서는 수백년 동안 개운서(改運書)로서 널리 알려진 명저이기도 하다.

원료범은 무슨 사연이 있어 이러한 책을 쓰게 되었는가. 그는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생계를 위해 의학공부를 하고 있었다. 어느 날 상수역학(象數易學)에 정통한 공(孔)선생을 만났는데, 이렇게 예언하였다. 

"당신은 의학공부를 그만두고 학문을 해서 벼슬을 할 운명이다. 초시에서는 14등으로 합격하고, 그 다음 시험은 71등으로 합격한다. 마지막 시험에서는 9등을 할 것이다." 다음해 시험을 쳤는데, 세 시험의 등수가 모두 적중하였다. 그 다음에 공선생은 '모년에 공생(貢生)이 되고 공생에 뽑힌 후 모년에는 사천성의 대윤이 된다. 대윤에 부임한 지 삼년반이 지나면 관직을 사임하고 고향에 돌아가서 53세 8월 14일 축시에 거실에서 죽는다. 아깝게도 자식은 없다'고 예언하였다.

10대 후반에 들었던 이 예언은 관직생활을 할수록 신기하게도 다 들어맞았다. 이로 말미암아 원료범은 나아가고 물러남, 더디고 빠름도 운명에 정해져 있다는 사실을 확신하였다. 나는 53세가 되면 죽을 것이다! 그래서 매사를 담담하게 생각하고 더 이상 뭘 구하려는 생각을 하지 않게 되었다. 숙명론자가 된 것이다. 

그러던 그가 37세가 되던 1569년에 우연히 남경 서하산(棲霞山)에 머무르던 운곡 선사를 만나면서 인생관이 바뀐다. 사흘 밤낮을 운곡 선사와 토론하면서 운명은 바뀔 수 있다는 신념을 갖게 된 것이다.

운곡 선사 가르침의 핵심은 '지금 당장 생각과 습관을 바꿀 것' '다른 사람에게 좋은 일을 많이 할 것'이었다.

이 두 가지 가르침에 감명받은 원료범은 이전까지 자신의 호가 학해(學海)였는데, 이날 이후로 '평범을 끝마친다'는 뜻에서 호를 '요범(了凡)'이라고 바꾸었다.

요범은 이후로 혼자 있을 때에도 항상 생각을 맑게 가지려고 노력하였고, 다른 사람들에게 공덕을 쌓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였다.

원료범에 의하면 사람이 생각을 바르게 가지려고 꾸준히 노력하다 보면 스스로 신통한 꿈을 꾼다고 한다. 더러운 오물을 토해 내거나 옛 성현이 자기를 손잡아 이끌어 주시기도 하며, 혹 허공을 날거나 걷기도 하고 좋은 깃발이나 보물 덮개 기타 각종 훌륭한 사물을 얻는 꿈을 꾼다는 것이다. 이러한 일은 모두 다 허물이 사라지고 죄가 없어지는 징표라는 것이다. 

마음을 닦으면 꿈의 내용이 달라지고, 꿈이 달라지기 시작하면 운명이 바뀌기 시작하는 조짐으로 해석된다.

원료범은 또한 팔자를 고치기 위해 3천가지 공덕을 쌓기로 결심하였다.

장부책을 만들어 놓고 한 가지 선행을 할 때마다 즉시 붓으로 기록하였다. 

원료범은 이러한 정신수양과 공덕으로 인하여 일찍이 공선생이 예언하였던 53세라는 운명적 한계를 훨씬 넘어 74세까지 천수를 누렸다. 

팔자를 바꾸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고금을 막론하고 공덕(적선)을 쌓는 일이다.

막고 푸는 방법이 가장 확실한 방법이기도 하다.

'요범사훈'에서도 적선을 강조한다.

이 책은 옛 사람들이 공덕을 쌓았던 사례를 여러 가지 소개하고 있다.

이 책에서는 어떤 사람이 착하게 살았는 데도 그 자손이 흥성하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진짜 선[眞善]과 가짜 선[假善]이 있다고 설명한다. 가선은 공덕이 아니다.

진선과 가선을 구분하는 기준은 무엇인가. 남에게 이로운 것은 선이고, 자신에게 이로운 것은 악이다.  남에게 이로우면 남을 때리고 욕하는 것도 모두 선이 될 수 있다.

자기에게 이로우면 남을 공경하고 예의를 갖추는 것도 모두 惡이라는 이야기다. 이러한 까닭에 사람이 善을 행할 때 남을 이롭게 하는 것이 모두 公이고, 公이면 진짜 善이다. 자기를 위하는 것은 私이고, 私이면 가짜 善이다. 또 마음에다 뿌리를 두는 것이 진짜이고, 겉으로 형식과 모양만 내는 것은 가짜이다. 無爲로 자연스럽게 행하는 것이 진짜이고, 有爲로 억지스럽게 하는 것은 가짜이다.

이러한 것들은 모두 스스로 잘 살펴보아야 한다.

'요범사훈'은 운명을 뛰어 넘는 길을 제시하고 있다. 말하자면 팔자 고치는 책인 것이다.

그 핵심은 공덕을 쌓는 일이다. 팔자라는 고정된 붕어빵 틀을 깨부수는 쇠망치는 공덕이라는 쇠망치이다.

문제는 실천이다. 

팔자를 안다고 하더라도 고치지 못하는 이유는 실천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결국 팔자에 끌려다니게 마련이다.

 

---------------------- 조용헌 교수님의 글 [펌/끝] ----------------------------------------

또한, 숙명은 카르마라고 하여 “업(業)”을 말한다.

부처님께서는 승의제의 관점에서 업은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말씀하셨다. 즉, 승의제의 차원에서는 카르마, 숙명, 그리고 업은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말씀이다.

이 말씀은 깨달음을 얻어 붓다가 되어 승의제에 거하게 되면 세상사의 윤회 굴레로부터 벗어나 세속적인 인연을 초월해서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말한다.

십이연기도 바로 인연의 원리이므로 깨달음을 얻은 후에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은 정신적 대자유를 얻었기 때문에 가능하다.

물론, 정신적 대자유를 얻어 정신적 인과의 법칙과 숙명에서 자유롭다하더라도 육체를 지니고 있는 이상 육체로부터 이루어지는 행에 대한 업 그리고 말로서 이루어지는 업은 여전히 존재한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은 육체를 지니고 있는 이상 세속제(승의제에 반대되는 형이하학)의 영향을 받고 살아간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붓다가 되어 정신적 대자유를 얻는다고 하여도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육체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세속제의 카르마를 받게 되며 인과의 흐름에 놓이게 되고 숙명론이나 결정적 플로우(흐름)에 존재하게 된다고 할 수 있다.

이를 벗어나는 유일한 길은 완전히 열반(니르바나)에 들어 육체를 벗어버리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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