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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http://www.mtong.kr/read.php3?aid=137461860910981t43&PHPSESSID=1f94d58eb6a001b282e1be44acebc170

 

 

‘점심을 사겠다’는 전화를 받았다. 나의 멘티였던 취업준비생이 직장을 얻게 되어 점심을 낸다는 것이다. 대졸백수가 삼백만 명을 넘었다는 요즘 같은 취업난속에서··, 내일처럼 기뻤다. 그는 대학을 졸업한 후 2년여, 십 수군데 입사시험과 면접을 쫓아다녔다.

“정말 해보고 싶은 일이었는데 운 좋게 취업이 되었습니다.” 마음고생이 심했는지 수척해진 얼굴이 오늘은 환하게 밝아졌다. 기쁨에 눈까지 반짝거렸다.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스스럼없이 봉급액수도 밝혔다. 액수의 많고적음을 전혀 마음에 두지 않는 눈치이다. 계산속 밝히는 신세대답지 않다. 몰래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매달 수업료 50만 원씩 내고 일을 배우는 자리라고 생각해라.” 덕담을 해주었다. ‘그런데 회사는 수업료 안 받고 일 가르쳐주고 월급까지 준다. 넌 매달 50만원 더 받는 셈이다. 얼마나 기분 좋은 일이냐!’

 

내가 그의 멘토가 된 것은 지난해 11월, 그가 보내온 이메일 편지 때문이었다. 그전까지 그는 80여 명이나 되는 취업아카데미 동기연수생중 하나일 뿐이었다. 얼굴도 기억나지 않았다. “지원한 기업에 서류심사는 통과했는데 필기시험이 논술입니다. 갑작스럽게 어떻게 준비해야할지 막막하니 도움을 주십시오.”라는 편지였다.

논술이 대입시에서도 점점 사라지는 요즘, 취업시험에 논술을 본다! 신문사 논설위원을 다년간 해본 글쟁이로서 듣기에 반가웠다. 난 취업준비생들에게 글쓰기 강의를 하면서 논술쓰기를 숙제로 낸 일도 있었다.

답장을 썼다. 몇 가지 주제를 예상하여 그에 따른 자기견해와 주장을 요약하는 방법을 조언했다. 그러나 준비기간이 너무 짧았다. 며칠 후 ‘낙방했다’고 전화를 해왔다.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이다. 좋은 논술이 십여 일 벼락치기로 나올 수는 없다.

 

그러나 낙방소식을 전해 듣는 순간,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처음 이메일을 받았을 때부터 머지않아 그가 꼭 취업을 할 거라는 믿음이 들었다. 걱정이 되지 않았다. 한두 번 강의실에서 만난 일 밖에 없는 선생에게 당당히 이메일로 도움을 청하는 열정이, ‘떨어졌다’는 전화도 당당히 할 수 있는 배짱이 믿음직했다. 그만한 열정과 배짱이 있는데 세상에 안 될 일이 무언가.

 

열정과 배짱은 원하는 씨앗을 싹틔우고 열매를 맺게 해준다. 

열정의 뜨거움이 없으면 씨앗은 싹트지 못한다. 

씨앗이 싹터 꽃을 피워도 배짱이 버텨주지 못하면 그 꽃은 열매를 맺지 못한다. 배짱은 참고 버티며 꾸준히 밀고 가는 지속성이다,

 

우리 때는 일반적으로 숫기가 없었다. 선배나 스승에게 사적인 일을 들고 가서 도움을 요청하는 건 정말 용기(?) 있는 일이었다. 나서야 할 때에도 가슴을 펴고 당당하게 나서질 못했다. 그래서 더욱 배짱이 좋은 친구들이 부러웠다.

한 때 배짱은 돈의 힘이라고 생각했다. 주머니가 든든해야 배짱도 나온다. 오래 전 일이다. 후배들 댓 명과 저녁을 먹은 후 맥주 집에 갔다. 그냥 헤어지기는 섭섭하니 입가심으로 맥주 몇 병 더 하자는 2차였다. 그날 지불은 내가 해야 할 입장이었다. 서로 한두 잔 권하다보니 댓 병씩 몇 차례 더 시키게 되었다. 속이 불편했다. 예산을 훨씬 초과할 계산서를 생각하니 어깨가 움츠러들고 술맛이 안 났다. 돈이 있어야 버틸 힘도 생기고 가슴도 펴진다.

돈이 있는 배짱은 예상하기 쉽다. 

 

그러나 돈이 없으면서 나오는 배짱은 무엇인가. 시저는 해적들에게 인질로 잡혔을 때 ‘왜 내 몸값을 그렇게 적게 요구하느냐? 몇 배 더 주겠다.’고 큰 소리쳤다. 나중에 돈을 주고 풀려나자, 토벌대를 조직해 돌아와 그 해적들을 다 붙잡아 죽여 버렸다.

시저의 배짱은 돈이 없었던 상태에서 나왔다. 인질대금으로 준 돈은 친지들에게 빌린 돈이었다. 시저는 젊을 때부터 많은 돈을 빌렸다. 언제나 빚이 엄청났다. 아무리 엄청난 빚이라도 대로마제국을 세운 시저의 역량 큰 가슴을 조일 수 있었을까.

배짱은 역량이다. 실력, 역량이 있으면 가슴도 펴진다. 배에도 힘이 들어간다. 

그렇다면 역량이 부족한 사람은 언제나 새가슴으로 살아야하나? 물구나무서서 거꾸로 보기가 필요한 곳이 바로 여기다.

가슴부터 펴본다. 가슴을 크게 펴면 들이마시는 공기량도 커진다. 공기는 하늘의 기운이다. 하늘 기운을 받으면 쳐졌던 고개도 올라간다. 배포도 커진다. 하늘 기운을 너무 많이 마신다고 막는 사람 없다. 하늘도 말리지 않는다. 활짝 편 가슴에서 배짱이 나온다.

 

세상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넓다. 할 일도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많다. 사실 논술시험고배는 그에게 세상 넓음을 깨닫게 하는 시발점이었다. 세상을 내 눈으로 보면서 내 글로 표현할 때 내가 해야 할 일도 보이기 시작한다. 내 글을 쓴다는 것은 내가 해야 할 일을 맡기 위해 하루하루 끊임없이 역량을 키워나가는 작업이다. 가슴을 키우는 작업이다.

그는 ‘얼마 전부터 108배를 시작했다’고 자랑한다. 종교를 가진 게 아니라 ‘건강을 위해서’란다. 맞다, 건강 해야지! 그래야 가슴도 활짝 펴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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