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굶기는 아내, 밤을 굶기는 남편
결혼생활 2년째인 젊은 부부 한 쌍이 서로에게 너무나 실망을 했다며 상담을 청해왔다.
"신혼 초엔 꼬박꼬박 아침밥도 잘 차려주더니 이제는 으레 제 손으로 밥 챙겨 먹고 나가라는 건지... 결혼한 여자가 이래도 되는 겁니까?"
남편의 호소에 부인도 할 말이 많았다. "밥 굶기는 거랑 잠자리 거부하는 거랑 비교가 되나요? 사람 면전에 두고 어떻게 그렇게 무시할 수가 있어요?"
이 말에 남편이 "처자식 먹여 살리겠다고 일 나가는 사람 밥도 안 차려주는데 뭐가 예뻐서..."라고 방어하자 부인은 "퇴근하고 집에 오면 허구한날 인터넷만 보고있는 사람한테 아침밥 차려주고 싶겠어요?"라고 응수했다.
두 사람 모두 갈등의 원인이 상대방에게 있다고 주장하는 모습이 꼭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를 놓고 씨름하는 것같았다. 겉으로 보기에 이들 부부는 남편은 아침식사, 부인은 잠자리를 원하고 있지만, 진정 두 사람이 상대방으로부터 받고싶었던 것은 관심과 배려의 마음이었다. 사실 아침밥을 차리고, 잠자리 요구에 응하는 것이 부인이나 남편 어느 한 쪽만의 의무는 아니다. 서로에게 관심을 가지고 배려하는 마음만 있다면, 그러한 일들은 남편의 역할, 부인의 역할 구분 없이 양측 모두 할 수 있는 것들이다. 그리고 상대방의 요구를 들어줄 수 없을 경우가 생기더라도 기꺼이 대안을 찾으려고 노력할 수 있다. 아쉽게도 이들 부부는 그러한 노력을 기울이기보다 갈등을 키워나가는 쪽을 택했던 것이다.
이들 부부의 갈등을 증폭시켰던 주원인은 무엇보다도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이것을 해주지 않는다면 저것은 기대하지 말라'는 식으로 상대방이 가치를 두거나 원하는 것을 제공하지 않음으로써 아침밥과 잠자리, 기타 등등을 무기 삼아 '꼬리에 꼬리를 무는 파워게임과 복수혈전'을 벌였던 것이다.
이러한 소모전은 결국 부부간의 사랑을 주고받아야 할 아침식탁이나 잠자리를 부부 힘겨루기의 場으로 변질시키고 말았다. 이들이 진작에 자신이 원하는 것은 상대방의 관심과 배려라고 상냥하면서도 솔직하게 표현할 줄 알았다면, 서로를 굶기고 거부하는 암묵적인 방식으로 자신의 불만을 표시함으로써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세상에 아무리 가까운 부부라 해도 자신의 기대와 요구가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표현하고 대화를 나누지 않는다면, 상대방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알 수 없다. "당신의 마음이 담긴 따뜻한 아침밥 먹고 가면 하루가 든든할 것같아!" "멋진 당신이 꼭 안아주면 오늘밤 행복하게 잠들 것같은데..." 사랑하는 남편, 소중한 아내가 이런 말을 하는데 그 말을 들어주지 않을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말 한 마디로 천냥 빚을 갚는다는 속담처럼 부부 사이의 진심 어린 말 한 마디에는 아침부터 밤까지 굶지 않고 배부를 수 있는 사랑의 힘이 담겨있다.
부부 여러분! 굶기지 말고 말로 합시다!
유계숙/한국가족상담교육연구소 선임연구원·가족학박사, 한겨레 가족클리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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