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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역을 싫어하는 CEO의 한계

 

● 인용

 

자한이 송군에게 일러 말하기를 칭찬하고 상주는 일은 백성들이 좋아하는 것이니 군주께서 몸소 행하십시오죽이고 처벌하는 일은 백성들이 싫어하는 것이니 제가 그것을 담당하고 싶습니다.“

 

(子罕謂宋君曰慶賞賜與民之所喜也君自行之殺戮誅伐民之所惡也,臣請當之.

 

외저설 -

 

 

● 해설

 

<사례>

 

S테크의 김00 대표.

 

공학박사 출신인 그는 왠만해선 화를 내지 않는 온화한 성격의 CEO로서,직원들과 부대끼는 것보다는 혼자 조용히 연구실에서 연구하는 것을 더 좋아한다.

 

하지만 회사 운영을 하다보면 연구만 할 수 없는 법직원들에게 싫은 소리도 해야 하고심지어는 해고도 해야 하는 것이 CEO로서는 감당해야만 할 업무이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감정적인 콘트롤에 힘들어 하는 자신을 발견한 김대표는 이 역할을 대신해 줄 만한 사람을 물색하다가 주위의 추천으로 예비역 중령 출신 한 분을 상무로 영입했으니00 상무가 바로 그 사람이다.

 

차상무는 군경력자였던만큼 지휘 통솔에 있어서만큼은 김대표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의 경험을 보유하고 있었다.

 

차상무는 "김대표님은 연구에만 매진하십시오제가 모든 악역을 전담하겠습니다욕은 제가 다 듣겠습니다"라면서 김대표의 마음을 편하게 해줬다.

 

차상무는 예전의 다소 느슨하던 회사 분위기를 일신시켰다.

 

잘못을 저지른 직원들에 대해서는 바로 호통을 치는 일도 있었고김대표로서는 그런 제도가 있는 지 조차 몰랐던 징계제도를 동원해서 나태한 직원들에게는 감봉조치를 하거나 경고를 하기도 했다.

 

김대표는 예전부터 직원들의 근태에 불만이 많았다아무래도 IT 회사이다 보니 야근이 많아서 직원들의 아침 출근시간이 들쭉날쭉 했었는데이 점에 대해서 김대표는 강하게 꾸짖지를 못했었다.

 

하지만 차상무는 본인이 아침 7시 반이면 어김없이 출근한 다음 직원들의 출근시간을 빈틈없이 챙겼기에 직원들이 출근시간을 지키지 않을 수가 없었다.

 

김대표는 참으로 흐뭇했다자신이 약한 부분을 이렇게 보완해 주는 상무가 있으니 자신은 연구에만 몰두할 수 있을 것 같았고회사는 탄탄대로에 접어들 것 같았다.

 

<해설>

 

# 1

 

"대표님악역은 제가 담당하겠습니다제가 대신 욕을 듣겠습니다대표님은 연구에만 몰두 하세요."

 

김대표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었던 차상무의 이 말이 과연 어떤 결과를 낳았을까? S테크에서 벌어진 그 뒷이야기는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준다.

 

차상무가 S테크에 입시한 지 1년 정도 시간이 흐르자회사 내에서는 이상한 기류가 감지되었다김대표는 말이 대표이지 자신은 마치 일개 연구원으로 취급받는 느낌을 받기 시작한 것이다.

 

분명 필요한 일이라서 김대표가 직원들에게 지시를 해도직원들은 자꾸 차상무의 눈치를 보는 것이다차상무 입에서 '진행해도 좋다'는 허락이 떨어져야 직원들도 실행에 옮기는 일이 많아졌다.

 

아울러 차상무도 처음에는 김대표의 지시에 별다른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는데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자, '대표님그게 말이죠제 생각은 다릅니다.'라는 식으로 이의를 제기하는 일이 많아졌다.

 

차상무는 지속적으로 직원들과 회식을 하면서 유대를 쌓기도 하고또 징계권을 적절히 휘두르면서 전체적인 장악을 해나갔기에직원들은 점차 차상무와 코드를 맞추려 하고차상무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 더 민감하게 생각하는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김대표는 기가 막혔다자신이 개발한 제품이 회사를 먹여 살리고 있는데도 정작 임직원들은 차상무의 생각이 무엇인지를 더 따지게 됐으니.

 

더구나 차상무는 자신에 대한 대우를 좀 더 올려달라는 식의 요구를 하면서, '직원들이 대표님에 대한 불만이 많다동요가 있다하지만 내가 잘 막고 있다'는 식으로 으름짱을 놓는 것이 아닌가.

 

김대표로서는 이 난국을 어떻게 대처해야 할 지 고민스럽다면서 내게 법률적인 방안이 있는지 문의해 왔다.

 

법률적으로야 주식의 과반수를 갖고 있는 김대표가 주주로서의 권리를 행사하여 차상무를 해임하는 방법이 있을텐데이 경우에도 정당한 이유 없는 해임이라면 손해배상책임을 져야 한다는 점을 설명해 주었다.

 

# 2

 

한비자는 일관되게 형벌권과 포상권은 모두 군주 한 몸에서부터 나와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러한 한비자의 주장은 위임의 적극적인 활용을 통해 분권적이면서도 효율적인 업무처리가 강조되는 현대 경영과는 맞지 않는 고리타분한 주장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한비자는 형벌권과 포상권이 군주의 손에서 벗어나게 되면 그 권한이 권신들에 의해 남용되어 종국에 가서는 군주의 권위를 해하게 될 것이라는 점을 지적하면서 다음과 같은 예를 들고 있다.

 

"전상(田常)은 군주에게 작위와 봉록을 요청하여 벼슬아치들에게 주었다.

그는 백성들에게 곡물을 꿔 줄 때는 큰 말로 퍼주고거두어들일 때는 작은 말로 받아 은혜를 베풀었다.

 

이렇게 되자 제나라의 군주 간공(簡公)은 덕을 잃고 전상이 그 권한을 잡게 되었으며결국 간공은 시해당했다.

 

자한(子罕)이 송나라의 군주에게 말했다.

 

"포상을 받는 것은 백성들이 좋아하는 일이므로 왕께서 직접 하시고 형벌을 받는 것은 백성들이 싫어하는 일이므로 신이 담당하겠습니다."

 

그런데 막상 그렇게 하자 송나라 왕은 형벌의 권한을 잃게 됐고자한은 이를 사용해 결국 왕을 협박했다.

 

전상은 단지 덕을 베푸는 권한만을 사용하고도 간공을 시해할 수 있었고,자한은 단지 형벌의 권한만을 사용하고도 송나라 왕을 위협할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의 신하들 중에는 형과 덕의 권한을 모두 사용하는 자들이 있으니지금의 군주는 간공이나 송나라 왕보다 더욱 위태롭다.“

 

이병 편 -

 

 

# 3

 

한비자의 이 같은 우려는 직원들의 관점에서 살펴볼 때 충분히 납득이 간다.

 

직원들은 자신에게 직접적인 위해를 가하는 상급자에 대해서는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다그런데 그 위해를 가하는 사람이 상무이고대표는 징계나 관리에 대한 일체의 권한을 상무에게 맡겨놓은 것이 명백한 상황이라면 과연 어느 직원이 대표의 위엄에 머리 숙일 것인가?

 

물론 대표로부터 권한을 위임받은 상무가 삼국지의 '제갈량'처럼 군주의 뜻을 충분히 이해하여권한을 행사하면서도 스스로 몸을 낮추어 그 위엄과 공을 군주에게 돌리는 그런 정도의 충성심이 있다면 군주의 권위는 보전된다.

 

하지만 부하들이 자신을 두려워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 권위의 원천이 '자기자신'인 양 착각하게 된다면 이는 실제 권한이 있는 자의 권한을 빌려와서 그 권한을 마음껏 휘두르는 '호가호위(狐假虎威)'의 상황이 발생하게 된다.

 

# 4

 

전국 시대 중국의 남쪽 초나라에 소해휼(昭奚恤)이라는 재상(宰相)이 있었다.

 

북방의 나라들은 이 소해휼을 몹시 두려워하고 있었다초나라의 실권을 그가 장악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초나라 선왕(宣王)은 북방의 나라들이 왜 소해휼을 두려워 하는지 이상하게 여겼다.

 

어느 날 선왕은 강을(江乙)이라는 신하에게 그 이유를 물어보자 강을이 대답했다.

 

"전하이런 얘기가 있습니다호랑이가 여우 한 마리를 잡았습니다그러자 잡아먹히게 된 여우가 말했습니다.

 

잠깐 기다리게나이번에 나는 천제로부터 백수의 왕에 임명되었네만일 나를 잡아먹으면 천제의 명령(命令)을 어긴 것이 되어 천벌을 받을 것이야내 말이 거짓말이라 생각하거든 나를 따라와 봐나를 보면 어떤 놈이라도 두려워서 달아날 테니.

 

여우의 말을 듣고 호랑이는 그 뒤를 따라갔습니다과연 만나는 짐승마다 모두 달아나는 것이었습니다사실 짐승들은 여우 뒤에 있는 호랑이를 보고 달아난 것이지만호랑이는 그것을 깨닫지 못했습니다북방의 제국이 소해휼을 두려워하는 것은 이와 같습니다실은 소해휼의 배후에 있는 초나라의 군세를 두려워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듯 여우가 호랑이의 위세(威勢)를 빌려 호기를 부린다는 뜻으로남의 세력(勢力)을 빌어 위세(威勢)를 부리는 것을 호가호위라고 한다.

 

위 사례에서 차상무는 결국 호가호위를 계속하는 과정에실제 자신의 권위를 높이는 결과를 낳은 것이다.

 

# 5

 

한비자는 말한다.

 

호랑이가 능히 개를 굴복시킬 수 있는 까닭은 발톱과 어금니를 가졌기 때문이다가령 호랑이가 발톱과 어금니를 버리고 개로 하여금 그것을 쓰게 한다면 호랑이가 도리어 개에게 굴복할 것이다.

 

군주란 형(형벌)과 덕을 가지고 신하를 제어하는 자이다만일 군주가 형과 덕의 권한을 놓아두고 신하로 하여금 그것을 쓰도록 한다면 군주는 도리어 신하에게 제어당할 것이다.“

 

 

독재를 일삼는 군주의 해악 못지않게 권신들에 의해 휘둘려서 자신의 권한을 제대로 행사하지 못하는 군주의 해악 역시 큰 법이다.

 

우선 칼을 쥐었다면 자의건 타의건 목적추구의 방식과 싸움의 양상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정신의 균형을 잃은 사람에게 그 칼을 맡겨서는 안 되지만한편 칼을 잡고 쓸 줄 모른다는 것도 마찬가지로 위험하며안전을 그에게 의탁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결과적으로 죄악이 된다 할 것이다.

 

악역 맡기를 두려워하는 CEO들은 그 악역을 누군가가 대신 맡았을 때 발생할 수 있는 위험을 충분히 인지하여야 할 것이다.

 

 

● 지혜 한자락

 

조직원들에게 혜택을 주는 것이나 징계를 가하는 것은 리더의 본질적인 권한에 속하는 것이다이 권한이 위임될 경우 권력의 지형도(地形圖)는 바뀌게 되고리더의 지휘권은 표류하게 될 위험성이 있다.

 

악역맡기를 두려워하지 말라악역을 맡는 것 역시 피할 수 없는 CEO의 운명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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