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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지의 승리 Triumph Des Willens

 

대중은 작은 거짓말 보다는 큰 거짓말에 더 쉽게 속는 법이다.
                                          
          - 아돌프 히틀러(Adolf Hitler), 나의 투쟁(Mein Kampf) 中



가장 교묘하고 큰 거짓말은, 심하게 말하자면 제대로 된 사기 실은 가장 그럴듯하고 실제 같은 것입니다.

히틀러는 그러한 거짓말의 매커니즘을 너무나도 잘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히틀러의 선전선동술은 너무나 유명합니다.
그는 연설을 한 번 할때도, 해질녘에 해를 지고 하는 것을 선호했습니다.  후광을 받기 위해서이죠.

그런 그의 가장 훌륭한 조력자는 공보장관 요제프 괴벨스.

그는 히틀러의 조력자들중에서도 가장 고등교육을 받은 엘리트 지식인이었습니다.
경제적으로 매우 빈곤했던 그는 장학금을 받으며 독일 최고의 명문대학들인 뷔르츠부르크,본,프라이부르크,뮌헨 대학등의 8개 대학을 모두 거쳤고, 지금도 英 Time紙가 선정하는 전세계 50대 명문대에 들어가는 하이델베르크大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그가 전공한 고전문헌학은 문학,철학,역사학 등을 아우르는 폭넓은 학문이었으며, 그는 인문학 전반은 물론이고 예술에까지 폭넓은 지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서명할때도 늘 "박사 괴벨스"라고 했다고 합니다.

 

의지의 승리에 나치인사들의 연설 장면이 나오는데, 유일하게 괴벨스만이 군복이 아닌 양복을 입고 있습니다.
박사이자 "나치의 두뇌"다운 모습이죠.

괴벨스는 일찍이 프로파간다의 도구로서 대중매체에 주목하여 당시 독일 노동자의 일주일 급료로 살 수 있는, 세계에서 가장 싼 라디오를 보급시켰습니다.


괴벨스는 영화사에 빛나는 업적을 남긴 당대 최고의 영화감독 레니 리펜슈탈과 개인적인 친분이 있었는데, 그녀의 천재적인 영화적 재능에 괴벨스가 주목한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괴벨스와 레니 리펜슈탈

 

리펜슈탈에 의해서 탄생되는 작품이 바로 의지의 승리(Triumph Des Willens)입니다.

 


의지의 승리는 1934년 9월 독일 뉘른베르크市에서 열린 3일동안의 나치 전당대회를 담은 기록물입니다.
1930년대 영화를 본 적이 있으십니까?
상상만해도 조악하고 봐주기 힘들거라는 선입견이 드는게 일반적일 겁니다.
그러나 의지의 승리는 영화사에 한 획을 그었다는 평을 듣는 작품답게 놀라웠습니다.
교차편집을 통한 몽타쥬 기법은 물론이거니와, 무려 비행기까지 동원한 도입부의 전경샷과 크레인샷과 극부감샷까지, 지금은 너무나도 당연하지만 그때 당시로서는 획기적이었던 기법들이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높이 평가하고 싶은건, 36~48대에 이른다는 카메라를 동원해서 8개월동안 편집한 수고가 들어간 그 연출의 힘입니다.

 

 

아름다운 바그너의 음악까지 절묘하게 어우러져 들어간 의지의 승리는, 굉장한 예술적 완성도를 보여줍니다. 
하지만 정치적 의도가 짙게 베여있는 이 작품이 그런 영화사적 테두리를 떠나서도 호평을 받을 수 있을까요?

seeing is believing.
흔히 "사진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라고 말합니다. 원판불편의 법칙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하지만 사진이란 자체가 제한된 프레임으로 피사체의 일부분을 찍는 사람의 의도대로 담아내는 것입니다.
같은 피사체도 찍는 사람에 따라서 전혀 다른 사진이 될 수 있습니다. 실은 사진이야말로 가장 교활한 거짓말쟁이인지도 모릅니다.
다큐멘터리는 일반적인 극 영화와 달리 "사실"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영상이란 기본적으로 사진의 집합이고, 다큐멘터리도 영상의 한 종류이기에 이러한 논픽션의 신화는 재고되어야합니다.
누군가에 의해서 어떠한 의도를 가지고 프레임 안에 담기는 순간부터 그것은 이미 객관성과 순수한 의미의 실재성을 상실합니다. 수많은 미디어에 노출되어있는 현대인도 착각하기 쉬운데, 그 당시 사람들은 오죽했을까요.

의지의 승리는 위대하고 영광스러운 독일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담아낸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괴벨스의 전폭적인 후원을 받은 레니 리펜슈탈의 카메라 안에서 모든 것은 철저하게 연출되고 계산되어 담겨집니다.

철저하게 로우앵글로만 잡아 권위적이고 위엄있어 보이는 히틀러와 하이앵글로 추종하는 느낌을 만들어내는 군중들과, 강하고 위압적인 모습으로 도열해있는 나치 병사들은 (너무나도 당연하고 유명해서) 차라리 영악한 연출로 보이지 않습니다.

 

 

 

도입부에 전경샷은 비행기에서 촬영되었는데, 이것은 마치 히틀러가 하늘에서 내려온 구원자 같은 느낌을 주기에 충분합니다.

리고 다음 장면은 히틀러의 등장과 카퍼레이드 장면인데, 이것은 권위있고 위엄있는 지도자의 장엄한 등장이라기보다는 요즘 흔히 볼 수 있는 인기스타의 퍼레이드와 전혀 다를 바가 없습니다. 창가에서 운집한 군중들에게 손을 흔들어주는 모습에 이르면 이러한 특징은 두드러집니다. 로우앵글등의 구도에 의한 위대하고 위엄있는 히틀러는 물론이거니와, 이렇게 대중의 인기와 사랑을 한몸에 받는 친근한 이미지를 보여주는 것이 의지의 승리의 무서운 점입니다. 여기서 비춰지는 히틀러는 이 시대의 스타와 전혀 다를 바가 없습니다.

 

특히 무엇보다 가장 무서운 장면은, 작은 소녀를 안은 엄마가 카퍼레이드 중인 히틀러에게 꽃을 주는 장면입니다. 이러한 연출이야말로 고도로 계산된 프로파간다의 정수입니다. 소녀와 엄마, 꽃이 가진 긍정적인 이미지를 그대로 나치가 흡수하는 효과를 노렸다고 볼 수 있습니다.

 


병사들은 마치 캠프에라도 나온 것처럼 즐겁게 어울립니다. 면도하고 이발하고 세면을 하고 놀이를 즐기는 일상적인 모습을 보여준다는 점이 의지의 승리가 얼마나 영악한 영상인지 잘 말해줍니다. 강인한 훈련을 받는 나치 병사 같은 이미지 대신 즐거운 병사의 일상을 보여주고, 소년병들은 보이스카웃에 나온 것마냥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북을 칩니다.

 

 

잘 정돈된 거리에는 평화롭게 강이 흐르고, 나치 깃발이 나부낍니다. 1차 대전의 참혹한 패배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아름답고 평화롭지만 강한 독일의 모습을 의지의 승리는 끊임없이 강조합니다. 바그너의 음악은 강하고 웅장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때로는 부드럽게 영상을 어루만집니다. 의지의 승리는 호흡을 조절하며 관객을 사로잡습니다.

 

 

의지의 승리는 나치 전당대회를 담은 "기록물"로서 관객에게 다가오지만, 그것은 "나치에 의한 기록물"임을 잊지 말아야할 것입니다. 그것은 부드러운 폭력이며,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정신과 이성은 멍들어 버립니다. 사람의 눈과 손을 거치는 한, 절대적이고 순수한 의미의 불편부당不偏不黨이란 존재할 수 없습니다.
의지의 승리는 사실Fact을 담고 있지만, 그것은 날 것raw이 아닌 가공된 파편적인 사실fact일 뿐입니다.
종이가 나무가 아니고, 삼겹살이 돼지가 아니듯, 우리가 접하는 모든 이미지는 어떤 다른 시선일 뿐입니다.

우리가 믿고 있는 것이 실은 큰 거짓말이 아닌지, 당신이 보고 있는 모나리자를 한 번쯤 의심해 보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겁니다.

리펜슈탈은 종전후 나치인사들과의 친분관계도 부정했고, 유태인 학살도 몰랐으며 나치에 협력하려던 것이 아니라 순수한 예술로서의 영화를 만들려고 했다고 항변했지만, 괴벨스의 일기에 그것을 반증反證하는 내용이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의지의 승리(Triumph Des Willens) 관련 영상 링크

http://pan.best/W5cpdMbE

 

 

아래는 아돌프 히틀러(Adolf Hitler)가 남긴 말입니다.

 

대중은 여자와 같다. 자기를 지배해 주는 것이 출현하기를 기다릴 뿐, 자유를 주어도 어리둥절할 뿐이다.


대중은 이해력이 부족하고 잘 잊어버린다.

대중은 지배자를 기다릴 뿐, 자유를 주어도 어찌할 바를 모른다.

 

선전에 의해 사람들이 천국을 지옥으로, 또는 지옥을 천국으로 여기도록 할 수 있다.
 
여자는 약한 남자를 지배하기보다는 강한 남자에게 지배당하는 것을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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