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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전 후 폭파되는  하켄크로이츠 .

 

 

 

최초의 나치당 전당대회는 1923년 뮌헨에서 열렸다. 하지만 같은 해 11월의 맥주홀 폭동으로 인해 나치당 수뇌부가 투옥되고 나치당이 해산되면서 한동안 열리지 못하다가

1926년 나치당의 재건을 기념하기 위한 전당대회가 바이마르에서 열리게 된다.

1927년부터 폴란드 침공이 있었던 1939년까지 뉘른베르크에서 전당대회가 열리게됩니다.

1928년과 1930년~1932년까지는 대공황과 자금부족으로 열리지 못했습니다.

 

(뉘른베르크(독일어 : Nürnberg, 영어: Nuremberg)는 독일 바이에른주에 있는 도시이다.)

 

뮌헨과 바이마르를 오가던 행사가 뉘른베르크에서 고정적으로 개최된 이유는 크게 네 가지 정도로 볼 수 있다.

1. 바이마르 공화국과 나치 독일 시기에 바이에른은 독일의 국토 중앙부에 위치하여서 전국에서 사람들이 모여들기가 편했다.

2. 뉘른베르크를 비롯한 바이에른 일대는 신성로마제국 시기 선제후들의 모임, 속칭 제국 의회(Diet)가 열리던 개최지였기에 신성 로마 제국을 계승한 '제 3제국'을 자처하던 나치 독일 입장에서는 자신들의 역사적 정통성을 강조하는 효과를 누릴 수가 있었다.

3. 이 일대는 골수 나치당원인 율리우스 슈트라이허가 주지사로 재임중이었기 때문에 각종 공권력 지원 및 나치에 우호적인 대중들을 동원하는 것이 상대적으로 쉬웠다.

4. 뉘른베르크 일대에는 대규모의 도로들이 잘 정비되어서 각종 퍼레이드를 진행하기가 쉬웠다.

 

 

뉘른베르크 전당대회는 선전의 장이였다.

각종 행진과 대규모 군중들이 운집하여 그들의 지도자들에게 열렬한 성원을 보내는 거대한 쇼를 선전의 달인 괴벨스가 놓칠리 없었다.

뉘른베르크에서 처음으로 당대회가 개최되던 1927년부터 괴벨스는 전당대회를 촬영하여 홍보 영상을 만들었다.

1933년 자신들이 집권한 이후에는 영화 감독들을 초빙하기 시작한다. 

이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것은 바로 레니 리펜슈탈.

레니 리펜슈탈은 1933년과 1935년 두 차례의 전당대회를 각각 촬영하여 홍보 영화를 만든다.

1933년에 촬영한 작품의 이름은 신념의 승리(Der Sieg des Glaubens)이며,

1935년 작품의 이름은 의지의 승리(Triumph des Willens).이다.

작품은 오늘날까지도 선전 영화의 걸작으로 인정받고 있다.

 

 

 

 

뉘른베르크의 현재와 과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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