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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재판에는 원칙적으로 3심 제도가 보장되어 있다.

즉 1심 판결에 불복하는 자는 항소할 수 있고 항소심 판결에 대하여는 다시 대법원에 상고할 수 있다.

그러나 3심 제도는 헌법상 보장된 국민의 당연한 권리는 아니다. 국민에게 사실심 및 법률심의 재판을 받을 권리는 보장되나 모든 사건에 대하여 3번의 재판을 받을 수 있는 권리, 특히 최고법원의 판단을 받아 볼 수 있는 권리가 당연히 부여되는지는 헌법상의 문제가 아니라 입법정책의 문제인 것이다.

종래 상고제한과 관련하여 상고허가제가 시행된 적이 있었으나, 1994. 7. 27. 법률 제4769호로 제정된 상고심절차에관한특례법에 의하여 ‘심리불속행(審理不續行)’ 제도가 도입되어 시행되고 있다.

즉 일정한 사유가 있는 경우 대법원은 상고이유에 관한 주장에 대하여 나아가 심리를 하지 않고 판결선고의 절차에 의함이 없이 이유를 기재하지 않은 판결로써 상고를 기각할 수 있는 것이다.

심리불속행의 대상은 형사사건을 제외한 모든 상고, 재항고 및 특별항고 사건이다.

즉 심리불속행 제도에 관한 규정은 민사소송·가사소송 및 행정소송(특허법 제9장의 규정과 이를 준용하는 규정에 의한 소송을 포함한다)의 상고사건에 적용하고, 위 각 소송의 재항고 및 특별항고사건에 준용한다.

 

심리불속행의 사유는 상고심절차에관한특례법 제4조에 규정되어 있다.

즉 상고이유의 주장이

① 다음 각 호의 1의 사유를 포함하지 않는다고 인정되거나, 

1. 원심판결이 헌법에 위반하거나 헌법을 부당하게 해석한 때

2. 원심판결이 명령·규칙 또는 처분의 법률위반 여부에 대하여 부당하게 판단한 때

3. 원심판결이 법률·명령·규칙 또는 처분에 대하여 대법원판례와 상반되게 해석한 때

4. 법률·명령·규칙 또는 처분에 대한 해석에 관하여 대법원판례가 없거나 대법원판례를 변경할 필요가 있는 때

5. 제1호 내지 제4호외에 중대한 법령위반에 관한 사항이 있는 때

6. 민사소송법 제424조 제1항 제1호 내지 제5호의 사유가 있는 때

② 그 주장 자체로 보아 이유가 없는 때,

③ 원심판결과 관계가 없거나 원심판결에 영향을 미치지 아니하는 때이다.

 

 이러한 심리불속행의 사유가 있는지 여부는 대법원의 담당 재판부에서 이를 결정하고, 그 판단에 대하여는 사실상 불복방법이 없다.

간혹

① 심리불속행 판결에 대하여 판단유탈

② 전원합의체(全員合議體)에서 재판할 사항인데 소부(小部)에서 재판하였음을 이유로 하여 재심(再審)을 제기하는 경우가 있으나,

위 재심사유를 인정하지 않는다고 함이 대법원의 일관된 입장이다.

심리불속행 판결의 가장 큰 특징은 통상의 상고심 판결 선고와는 다른 절차에 의하여 판결이 고지(告知)된다는 점이다.

즉, 통상의 상고심 판결은 선고기일이 지정되어 당사자에게 기일소환장이 송달된 다음 법정에서 재판장의 낭독에 의하여 판결이 선고(宣告)되는 절차를 밟으나, 심리불속행 사건은 이와 다르게 법정에서의 판결 선고 절차가 생략되고, 상고기각 판결이 바로 당사자에게 송달됨으로써 그 효력이 생긴다.

따라서 심리불속행을 예상하지 못한 채로 상고이유 보충서 등을 준비하고 있던 당사자로서는 갑작스런 상고기각 판결문을 송달받고는 상당한 충격을 받을 수 있다.

이 때문에 심리불속행 판결을 저지할 목적으로 대법관 출신 전관 변호사를 선임하는 경향도 있으나, 그것이 도움이 되는지는 완전히 검증되지 아니한 문제이다.

다만, 상고사건의 진행을 잘 살펴보면 '심리불속행'으로 사건이 종결될 것인지 여부를 미리 짐작할 수 있다.

먼저 전원합의체에 회부된 사건은 심리불속행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시간적 제한도 있다. 즉 심리불속행 판결은 판결선고 절차를 생략하여 재판장이 판결 원본을 법원사무관 등에게 교부하고, 법원사무관 등은 즉시 영수일자를 부기하고 날인한 후 당사자에게 이를 송달하게 되는데, 대법원이 원심법원으로부터 상고기록을 송부받은 날부터 4월 이내에 심리불속행 판결원본이 법원사무관 등에게 교부되지 아니한 때에는 심리불속행으로 사건을 처리할 수 없는 것이다.

이 때문에 상고기록이 대법원에 접수한 때로부터 4개월이 지나도 대법원에서 사건처리를 하지 않으면 일단 심리불속행 기각은 면하게 된다. 때문에 실무상 대법원의 사건기록 표지에는 심리불속행 만료일자가 기재되어 있다.

대법원에 접수되는 사건은 나날이 증가하여 대법관의 업무부담이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다.

이에 대법관의 엄무경감 대책이 주요한 사법현안이 된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하급심의 충실화 및 조정의 활성화도 대안의 하나로 거론되고 있으나, 대법원 차원에서는 심리불속행 제도의 적극적인 활용이 그 해결책으로 거론되기도 한다.

이 때문에 상고이유나 재항고 이유가 원심의 전권사항인 사실오인을 주된 것으로 할 경우 심리불속행으로 상고기각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또한 선례가 없는 법리문제로서 원심의 결론이 타당한 것으로 보이는 경우에는 심리불속행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실무에서는 심리불속행을 피하기 위하여 '사실 오인'의 상고이유를 교묘하게 '법리 오해'로 재구성하는 등 갖가지 편법이 동원되는 것을 보게 된다.

심리불속행 제도에 대하여는 당사자의 불만이 대단히 크다.

그 주된 이유는 대법관이 심리불속행 사건에 대하여는 아예 상고이유를 보지도 않고 사건을 종결시키는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법원의 실무는 심리불속행 사건이라고 하더라도 일반사건과 같게 상고이유에 대하여 충분한 검토와 고민을 하고 있다.

물론 심리불속행 사건에 대하여는 그 상고이유에 대한 공식적 판단이 판결이유에 기재되지 않기 때문에 나중에 판례로서의 가치가 없고, 따라서 기존의 판례와 배치되더라도 재심의 여지가 없게 되며, 부담이 될 수 있는 판시를 만들어야 하는 고민을 피할 수 있다는 점에서 여러모로 편리한 측면이 있다.

정책법원을 지향하여 선택과 집중을 표방하는 대법원의 고육책으로 이해될 수도 있다.

심리불속행과 비교되는 것이 소액사건에서의 상고이유의 제한이다.

즉, 2,000만 원 이하의 소액사건에 대한 지방법원 본원 합의부의 항소심 판결이나 결정·명령에 대하여 상고 또는 재항고를 하려면

① 법률·명령·규칙 또는 처분의 헌법위반 여부와 명령·규칙 또는 처분의 법률위반 여부에 대한 판단이 부당한 때,

② 대법원의 판례에 상반되는 판단을 한 때 중 어느 하나에 해당하여야 한다.

 

종래 위 규정을 엄격하게 해석하여 중요한 쟁점에 관하여 상반된 판시를 내린 하급심 판결들에 대한 상고가 모두 기각되는 일이 발생하게 되었고, 이에 따라 대법원이 법령해석의 통일이라는 핵심적인 역할을 태만히 하였다는 사회적 비판이 제기되었다.

결국 대법원은 이와 같은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는 소액사건에 관하여 상고이유로 할 수 있는 ‘대법원의 판례에 상반되는 판단을 한 때’의 요건을 갖추지 아니하였다고 하더라도, ‘법령해석의 통일이라는 대법원의 본질적 기능을 수행하는 차원에서 실체법 해석 적용에 있어서의 잘못에 관하여 직권으로 판단할 수 있다’고 하여 예외를 인정하게 되었다.

너무나 타당한 해석이다.

소액사건에 대하여 상고가 제한된다는 면에서는 심리불속행 제도와 유사하지만 소액 사건의 상고심 처리에는 판결선고 기일이 지정되고 통상의 절차를 통하여 판결선고가 이루어지므로 심리불속행 사건의 처리와는 분명 다른 면이 있다.

 

심리불속행 사건이라도 판결선고의 절차를 거침으로써 당사자에게 불의의 타격을 주지 않도록 제도를 개선할 필요성이 있고, 어려운 쟁점에 대한 판단을 회피하기 위하여 심리불속행 제도에 의존하려고 한다는 의심을 받지 않도록 적절한 운용의 묘를 기하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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